수입을 잃은 청장년들이 녀성들의 짬을 비비고 서서 장사 절대를 거머쥐고 시장에 늘어섰다. 버린애들이 철도역과 거리에 기여 다녔고 시체가 여기저기 뒹굴었다. 력사상 처음 평범한 많은 녀자들이 굶어 죽지 말자고 몸을 팔게 되였다. 이 시기, 일반주민들에게는 세가지 선택만이 가능하였다. 죽음, 범죄, 코체븨. 연고자의 경우, 해외송금의 희박한 가능성도 포함시켜야 한다면 그게 하나 더 있었다.
두 말할것 없이, 도시주민의 개인장사나 직업창출은 당시 상업 및 로동제도 하에서 다 범죄행위였다.
교원인 나도 례외가 아니였다. 내가 처음으로 해 본 일은 양주였다. 가족을 죽이지 않으려는 불안한 책임감과, 시장으로 휘말려 가는 사회적 사태에 떠밀려, 나는 양주기술을 문헌조사하고, 대학 화학실험실 친구에게서는 증류랭각기를, 생물분원에서 파는 "질좋은" 아밀라제를 구입하고, 새벽마다 불빛막이를 한 부엌에서 소주를 고았다.
제품은 입을 모아 질 좋다고 호평하였다. 그러나 도저히 채산을 맞출수 없었다. 그 원인을 해명해본 결과, 농민시장에서의 원료구입으로는 적자로 된다는 "<북조선시장경제>법칙"을 처음으로 알았다. 즉 지식이나 로동의 부가가치 는 판매되지 않게 작용하는것이다. 이런 마켓트형 밀주업의 경우 "리윤" 비법은 두가지 즉, 술지게미이거나 타 알콜성분에 의한 에타놀농도의 기만뿐 이였다. 권력자의 밀주업만이 흑자를 낳게끔 <북조선 시장경제>의 기성구조는 이미 든든히 구축되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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