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はなぜ北朝鮮を脱出したのか 第6回
闇市場を徘徊する年長の少年たち 98年10月元山
職場はあるが仕事が無い。職業はあるが収入がない。
こんな有様なのに加えて住居まで失った私は、慌てる一方で、自分の家族全員をその夏の間中に大急ぎで、あちこちの親戚に無我夢中で頼み込んで、何とかやっと預けた。一息つくと95年もすでに秋にさしかかっていた。
さて、いざ一人となると、明日から私自身のこの身は、いったいどうしたらいいのか、お先真っ暗だった。
寝る場所のことならば、とにかくも“地に横たわって石を枕にすれば空が屋根になる”というのもまったくのデタラメではないが、自分で自分の口に食べ物を運ばねばならない現実については、頭の中が真っ白になった。
読者の方からは、筆者がいったい何をたわけたことを言っているのかと叱られるかもしれないが、当時は、そのような状況だったのだ。
完全配給型の計画経済社会で数十年間暮らして適応してしまえば、そこでの洗脳が、価値観はもちろん道徳や生活方式にまですみずみ及んで、人格が形成されてしまうのだ。
(北朝鮮では)配給品も商品も、品質をよく見て評価し、気に入るものを選びとるという習性がまったく存在しないのである(そう説明すれば、少しはご理解いただけるかも知れない)。
男が家計を見たり、炊事をすすんでしたりすることは、男からも女からも容認されない、(まるで)人格喪失したかのような「恥」であった。
そのような制度で習慣を守ってきた男が、突然、働き口も,収入も,家庭も,住まいもすべて失って、自分で食べ物を調達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無慈悲な立場に容赦なく立たされたのである。
共和国以前の日本植民地時代でもなく、収入のある働き口は、国以外の誰からも与えられない状況で、稼ぎは皆無で一銭の金もない私は、人々の目を避けながら、もしかするとと思って、00市を横切る河川の堤防に出て行った。
食べられる草や魚でも得られるかも知れないと期待したからだった。
思ったとおり、結構な数の人々が膝ほどの深さの川の水に入って、何かを機械的に熱心にすくいあげていた。それが何であるか、私にはまったくわからなかった。
人間が採集で生きたという話は、農耕の発見以前の人類歴史の記録でしか知らない私は、いくら凝視しても、砂と小石、そして水以外は見えなかった。
秋のせいか、堤防の草は木の筋ように固かった。
草をつまんで、そっと口に入れて噛んでみた。だが、いまだに知られていない、新種の食用植物発見の奇跡は起こらなかった。
この草を食べて生きられる牛馬が羨ましい気がした。私は川の縁を離れた。
この時ほどに、人間は食べなければ生きられない、ということが嫌になったこと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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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くあてはなかったが、私は殺風景な道を歩いていった。
秋が差し迫ると、行き先のある人々の足取りは一層早くなった様に感じられた。
全ての富が私から遠去かっていくように見えた。だが、私のように歩みがのろい人々も少なくなかった。
ふと気づくと、私の前には幼い女の子が立っていた。せいぜい十才を過ぎたばかりか。気温はすでに涼しくなっていたのに、それも女の子が素足で、肩の出たノースリーブの夏の下着の格好である。言葉は発しないが、その澄んだ瞳は何か大人の暖かい同情を期待しているようだった。
何の持ち合わせもなく、与える能力もない私は、あえてその視線を避けたが、歩みはとても離れられなかった。少女の代りに青い空が私の視野に入ってきた。幼い時、感動的に読んだアンデルセン童話の主人公が私を見下ろす感じがした。
瞬間、私はこの女の子をどこかで見た覚えがあることに気づいた。そうだ。私の大学の同僚の娘なのだ。あわてて振り返ると、私はその女の子の首をつかんだ。するとその女の子は、私を捉えて二度と放さないというようにしがみついて、わんわんと泣き始めたの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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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있으나 할일이 없고 직업은 있으나 수입이 없는 처지에다가 주거마저 잃는 나는 당황한 속에서, 자기 가족 전원을 여름내 분주히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손이야 발이야 빌며 사정하여 겨우겨우 맡기고 널어 놓어 한숨 돌리니 95년도 벌써 가을에 접어 들고 있었다.
정작 혼자고 보니 래일부터 이 내 몸은 도대체 어떻게 건사해야 하겠는지 막막하였다. 잠자리같은 것은 땅에다 몸을 펴고 돌을 베면 하늘은 지붕 삼는다지만 자기가 제입에 풀칠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의 압력에 눈앞이 아찔하였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필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리해 못하실 분도 있지 않겠는가고 본다. 완전배급형 계획경제사회에서 수십년간 적응하면 그 세뇌가 가치관은 물론 도덕이나 생활방식에까지 구석구석 미치여 적응 인격을 형성한다. 배급품도 상품도 질을 평가하고 마음드는 것을 선택하는 습성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못한다.
남자가 가계를 세우거나 취사일을 주동적으로 한다는 것은 남성 녀성 몰밀어 용납하지 못하는 인격상실적 수치였다. 그러한 제도와 인습을 지켜 온 남자가 돌연 하루아침에 일자리도, 수입도, 가정도, 집도 다 잃고 자기가 먹을 것을 자체로 마련할 무자비한 처지에 사정없이 내몰린 것이다.
일제시기라고 품팔이 할데라곤 어디에도 없고 돈 한푼도 없는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행여나 하여 00시를 가로 지르는 하천의 제방으로 나갔다. 먹을 만한 풀이나 물고기라도 얻어 볼수 있을가 하는 기대였다. 과연 적지 않는 사람들이 정갱이를 치는 강물에 들어서서 무엇인가 기계적으로 열심히 줏어 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인간이 채집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농경의 발견 이전 인류사의 기록으로나 아는 나에게는 아무리 보아야 모래와 잔돌, 그리고 물 뿐이였다. 가을이여서인지 제방의 풀은 나무처럼 굳었다.
풀을 뜯어 슬며시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식용식물 발견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풀을 먹고 살수 있는 소나 말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강기슭을 떠났다. 먹어야 살수 있는 사람이 저주러웠다.
갈곳은 없지만 나는 살풍경한 거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가을이 다가 오니 목표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층 더 빨라 진듯하였다. 그러나 나처럼 걸음이 느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문득 내 앞에 어린 처녀애가 서 있었다. 기껏해야 열살을 갓 넘겼을가. 날씨는 이미 선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녀자애가 맨발에다 어깨가 다 드러나는 여름 내의바람이다. 말은 못하나 그 맑은 눈동자는 무엇인가 어른의 따뜻한 동정을 바라고 있다.
아무것도 간진것 없고 능력도 없는 나는 억지로 그 시선을 피하였으나 발걸음은 차마 떼지 못하였다. 소녀 대신에 푸른 하늘이 내 시야에 들어 왔다. 어린 때 감동적으로 읽은 안데르센 동화의 주인공이 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이 애를 어디서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대학 동료의 딸이였던 것이다. 서둘러 돌아 서서 그 애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그 애는 나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듯 꼭 달라 붙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