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농촌의 구조적인 피폐
황해도, 특히 황해남도의 농촌은 군대 외에 도시 노동자들의 식량공급기지로서도 큰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한국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지역의 군단을 비롯한 각지의 부대에 보낼 '군량미'와, 평양 주민들의 배급식량인 '수도미'는 최우선 공출과제였다.
집단농업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협동농장별로 국가에 납부하는 양이 정해져 있고, 그 나머지가 농민들의 몫, 즉 '분배'(=수입)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의 집단농업은 생산의 정체가 심각하다. 원래는 협동농장의 생산계획에 근거해 비료, 농약, 종자, 비닐하우스, 트럭 등의 농기구와 연료 등의 영농자재가 국가로부터 지급되게 돼있는데, 재정악화로 인해 해마다 줄어들었다. 결국 이제는 농민이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버렸다.
그런데다 논밭에 물을 공급하는 양수기나 탈곡기를 가동하는 전력도 부족해,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도 수확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고질병이 돼버린 북한의 경제난으로 외화는 부족하고, 비생산조직인 군대에서 말단병사들에게 영양실조가 만연한 것은 우리가 지금껏 보도해온 바와 같다.
(<림진강>현지보고 굶주린 조선인민군, 그 실태와 구조1~6 [동영상] 굶주린 인민군병사 등의 기사를 참조바랍니다.)
당연히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난다. 수확은 감소하고 있는데, 국가에는 규정된 양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몫인 '분배'는 자꾸 줄어들고, 거기다 영농자재마저 부담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인 농민들의 피폐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봄의 모내기나 파종 시기에 비료나 종자의 대부분은 농민들이 준비해야 하는데 농민들에게 돈이 어디 있습니까. 협동농장의 간부한테 가을 수확 후에 갚기로 약속하고 빌려야 합니다. 물론 이자가 붙지요"라고 앞서 증언했던 황해남도의 당간부 김씨는 말한다.
마치 봉건시대의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빠듯한 생활을 강요당하는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확이나 탈곡 때 조금씩 수확물을 훔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저항마저 황해도에 집중된 '폭력적 수탈'에 의해 짓밟혀 버린 것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작년 여름 황해도 일대를 덮친 태풍 피해의 영향이 있었다. 황해남도 ○○군의 농촌간부 림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돌이켜 본다.
"작년의 큰비로 많은 논밭이 유실되어 생산량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그런데도 군대와 관리들이 수확기가 되자마자 와서 식량을 가져가버렸어요. 그 때문에 황해도의 농촌에서는 수확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월에 벌써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이렇듯 국가에 의한 무리한 수탈이 곡창지대 황해도에서 아사자가 대량 발생한 원인이 된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100~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 때에도 황해도는 북한에서 아사자가 가장 적었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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