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상인, 늘어나는 꼬제비
다음날 농촌을 나와 옹진군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장마당을 방문했다. 이 장마당에는 상인이 시장세를 지불해 확보한 공간(=매대)이 1000개 정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중 절반은 비어 있었다.
3년 전쯤 왔을 때는, 상인들이 바닥까지 앉아서 서로 경쟁하며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다. 이날 장마당의 인파는 많지 않았고, 사람들은 식품 파는 곳에만 모여 있었다.
구두나 냄비, 잡화, 화장품 등도 많이 진열돼 있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안 팔리는 것 같았다. 장마당에는 십 여명의 꼬제비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그 밖에도 멍하게 앉아 있는 노인도 몇 사람 있었다.
이들의 옷차림은 나쁘지 않았고 꼬제비와는 달라 보였다. 정체가 궁금해서 알고 지내는 상인인 염씨(가명)에게 물어보았다. "저 노인들 중에는 꼬제비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집에 있어도 밥을 못 먹고 스스로 돈을 벌지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장마당에 나온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집에 있어도 애물단지 취급이지요. 자존심 때문에 부끄러운지,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하지도 않고 그냥 앉아 있을 뿐입니다. 올해 들어 꽤 많아졌어요"
말이 나온 김에 최근의 경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전혀 안됩니다.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유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농민은 먹을 것도 없는데 현금이 있을 리 없고, 도시의 상인은 전시훈련이나 농촌 동원 등 통제가 많아서 안정적으로 장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물건을 들여온 외상만 늘어날 뿐입니다. 장사를 포기한 사람도 많습니다"
'유통'이란, 간단히 말하면 돈과 물건의 회전이다. 조선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황해남도는 중국에서 가장 멀고, 남쪽으로는 한국과 대치하고 있는 '막다른 곳'이다.
또한 지금은 대부분의 공장의 가동이 멈춰버려 생산되는 물건이 거의 없다. 중국과의 밀수가 왕성한 북부 국경지역과 달리, 경제의 동력이 완전히 상실돼 버린 셈이다.
앞서 방문한 OO리에는 옹진군의 도시부에서 농촌으로 동원돼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물어보니 예전과는 달리 동원을 나가더라도 음식도 보수도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완전히 무보수 노동이라는 것이다. 도시락을 자신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라고까지 했다.
시장을 걸어 다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에 150원(한화 30원) 짜리 '두부밥(유부에 간을 한 밥을 넣은 것)'을 샀다. 옆에서 보고 있었던 것일까, 어린 꼬제비가 다가와 "조금만 주세요"라며 옷자락을 잡는다. 건네주니 그 자리에서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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