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의 절정은 넘었지만 끝없는 농업의 부진
초봄부터 황해도의 농촌지역을 덮친 기근은 3월에서 5월에 걸쳐 절정을 맞아, 적어도 만 명 단위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아시아프레스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곡창지대에서의 비극은6월에 감자나 야채 등의 수확 덕분에 한숨 돌릴 듯 하지만, 4월 이후 북한의 여러 지역이 가뭄과 태풍에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올 가을의 농업생산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근의 절정을 넘은 후에도 황해도의 상황은 심각하다. 내년에 다시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진수, 이시마루 지로)
◇가뭄에 이은 홍수의 습격
올해 4월말부터 황해도를 포함한 서해(황해)안 일대의 극심한 가뭄이 한달 이상 계속됐다. 국영 미디어인 조선중앙통신은 '황해남도 안악군과 황해북도 송림시에서 비가 1밀리미터도 오지 않았다'며, '60년만의 가뭄'이라는 표현으로 그 심각성을 전했다.
올해 8월말 중국 요령성에서 만난 황해남도 00군의 농촌간부 림 씨는 가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면이 갈라질 정도로 심각하게 물이 부족했습니다. 학생들이 동원돼 열심히 밭에 물을 뿌렸지만, 보리와 감자의 수확이 줄어들게 돼 가격이 올랐습니다. 감자는 8월 중순을 지나도 키로 당 1,500원~2,000원(한화 약 270~340원) 정도로 비쌌습니다"
올해 들어 식량 가격이 일제히 2배 이상 오르는 등,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원래 키로 당 500원 정도였던 감자의 가격이 3배 이상 올랐다. 이것은 서민에게는 큰 타격일 것이다.
북한에서는 전년도의 수확물을 모두 소비한 4월 경부터 8월의 조생 옥수수를 수확할 때까지의 기간을 '보릿고개'라고 부른다. 소위 '춘궁'이다. 그 동안은 매년 5월말부터 수확되는 햇감자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가뭄에 의한 감자 가격의 급등으로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뭄은 황해도의 주요작물인 쌀의 작황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모내기 철에 비가 오지 않아서, 작업계획이 상당히 늦어졌습니다. 모종을 심어도 바로 시들어 버렸으니까요. 협동 농장에서 모내기를 모두 끝낸 것은 8월 5일이 지나서였습니다" (림 씨) 원래 5월 말에 끝나야 할 모심기가 2개월 이상 늦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의 증언 역시 일치했다. 황해남도 00군에서 병원 경영에 종사하는 박 씨는 중국 지린성에서 본지와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내기를 할 수 없으니 대신 대두(大豆)를 심으라는 정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김정은 동지의 '배려'로 파견됐다는 비행기가 실어 온 대두를 심는 일은, (농민이 아닌)저도 동원될 만큼의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4월부터 시작된 가뭄은 6월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야 해소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풍에 의한 집중호우가 2개월에 걸쳐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그 피해에 대해 9월 13일자 조선중앙통신은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6월 중순에서 8월말까지, 수해 때문에 전국적으로 300명 이상이 사망, 600명이 부상 또는 행방불명, 주택 8만 7,280여 동이 파괴 및 침수, 이재자 29만 8,050명의 피해가 발생. 농경지 12만 3,380정보(약 12만 헥타르) 피해'
이 발표가 북한 당국에 의해 과장된 것인지 축소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이 취재한 사람들은 모두 홍수의 피해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농촌 간부인 림 씨는 모처럼 심은 벼도 반 이상 흘러가 버렸다고 증언했고, 북한 내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구광호 기자는 7월에 황해남도 옹진군의 농촌을 방문해 "논이 수몰돼 갓 심은 모가 흩어져 있었다. 남새반(야채의 재배를 담당하는 작업반)이 기르고 있던 고추와 가지도 거의 전멸이었다"고 목격담을 말했다. 한편, "태풍이 비켜간 황해남도 해주 인근에서는 수해피해가 경미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9월 초 요령성에서 인터뷰한 황해남도 당 중견 간부 김 씨)
◇영농자재의 부족도 심각
올 가을 수확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천재지변 때문만은 아니다. 기근과 잇따르는 천재지변과 외에도 영농자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농촌간부 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소속된 협동농장에는, 올해 8월까지 정부가 공급해야 할 비료가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원래 부족분은 작업반장 등이 서로 돈을 내서 샀지만, 올해는 돈이 부족해 살 수 없었습니다. 9월 이후에 비료가 들어 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올해 수확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증언으로, 북한정부는 표면상으로나마 현 상황을 숨기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 확인됐다. 농촌사정을 잘 아는 당 중견간부 김 씨는 이렇게 말한다.
"황해남도에서는 농장 자력으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나라에서 종자와 비료 등 일정량의 영농자재 배급을 받았던 지역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에도 돈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부위부(정보기관) 등의 직원에게 일인당 100~200달러의 외화를 징수해 영농자재를 나눠 주었다는 것입니다. 보위부원은 나라에게 뺏긴 만큼 가을 수확 때 틀림없이 농민에게서 뺏어가겠지요"권력 기관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이러한 조치로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민중에게 악영향을 줄 뿐이라고 김씨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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