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부에 위치한 함경북도 샛별군의 한 피복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일제히 출근을 거부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국이 약속한 현물과 급여가 지급되지 않자 노동자들이 반발한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이러한 집단 직장 이탈이 발생했다는 정보가 전해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취재 강지원 / 정리 이시마루 지로)

아파트 거리에 늘어 앉아 장사하는 여성들. 지역 관리들이 자주 단속을 한다.
아파트 거리에 늘어 앉아 장사하는 여성들. 지역 관리들이 자주 단속을 한다. 2011년 6월 평양시 중심에 위치한 모란봉 구역에서. 구광호 촬영 (아시아프레스)

 

직장 포기 사건은 2013년 10월, 두만강을 끼고 중국과 인접한 샛별군의 한 피복 공장에서 발생했다. 북한 내부의 취재협력자가 현지를 계속 조사한 뒤 전해왔다. 이 피복 공장은 1990년대에 시작된 경제 파탄 속에 오랫동안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2012년에 샛별군 간부들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공장을 가동하는 것을 계획, 간부가 중국을 방문해 작은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죄수복과 작업복 등의 가공을 맡은 것이다.

이 공장에서 근무한 친족을 현지에서 취재한 P 씨는, 노동자들의 초기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강냉이(옥수수) 국수를 세끼 제공, 월급은 한 달에 백미 30킬로그램이며 현금 지급은 없다는 조건에 많은 현지 여성들이 달려들어 채용에 뇌물이 오갈 정도였습니다. 나의 친족은 무난히 입직했다고 기뻐했습니다 '

현금 지급이 없다는 대우에도 응모가 쇄도했다는 것은, 당시 시장에서 백미 1킬로 당 약 5,000원 정도였으므로 실제 15만원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영 공장의 일반 노동자 국정 월급이 2,000원 안팎이라고 볼 때, 약 75배나 되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 실세 환율은 1$(달러) =약 9,000원이어서, 달러로 환산하면 백미 30킬로는 16.7달러 정도 된다. 이를 되팔아 현금 수입을 얻는 것이다.

공장은 2013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P 씨의 조사에 의하면, 최초 채용 인원은 135명으로, 그 중 남성은 10명 정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생산 시작 후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때, 큰 문제가 제기됐다. 급여 대용이었던 백미가 약속대로 지급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여성 근로자 대부분이 출근을 거부했다.

'월급 용' 백미는 중국 기업이 들여 와 군(郡)의 관리를 통해 노동자에게 준다는 약속이었지만, 관리는 '군량미'분으로 절반을 빼고 노동자에게 지급했다. 이에 여성들이 분노한 것이다. 당황한 간부들이 노동자들의 집을 돌며 출근할 것을 설득했지만, '여성 근로자들은 보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공장에 왜 가나. (보수 없이) 나가면 굶어 죽게 된다며 간부들을 돌려 보내면 그만이었다고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지금의 조선(북한)에서는 누구라도 똑같이 공장에 나가지 않을 거에요'라고 P 씨는 말했다. 기존 북한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연줄이나 돈이 없으면 당국의 지시대로 배치 돼 직장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 피복 공장의 경우, 제시된 노동 조건을 바탕으로 본인의 의사로 응모했고, 또 그만 둔 것이다. 즉, 그녀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계약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 동안 20년 이상 북한 취재를 해왔지만, 이러한 '집단에 의한 보이콧' 움직임을 파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았다는 특수성은 있지만 북한 정부와 노동당이 통제하기 어려운 노동 현장이 출현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공장은 어떻게 됐을까? 2014년 들어서도 취재 조사는 계속됐다. 직장을 포기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간부의 설득에도 복귀를 거부했고, 중국 투자가들은 급여에 해당한 백미를 직접 샛별군 당국에 전달하면서 근로자에게 지급할 것을 부탁했지만 군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국은 다시 노동자 모집을 시작했지만 당국의 '계약 위반'이 널리 알려지며 인근에서 응모하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서, 먼 지역에서 사람을 모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중국인 투자가가 이 공장을 포기해, 현재 가동이 멈추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