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19일, 김정일의 사망이라는 '비보'를 접한 북한 주민들은 장군님(김정일)을 목메어 부르며 참배할 곳을 찾았지만 김정일의 동상은 없었다. 12월 24일, 김정은은 고위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당원들과 군인들, 인민들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한결같이 '장군님께 조의를 표시할 데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왜 장군님의 동상을 한 상도 모시지 못하였는가'하고 의문시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죄책감을 느껴 간부들이 머리를 숙이자 김정은은 '동상을 세우지 못한 것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그 문제에 관련해서는 장군님께서 너무도 엄숙하시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자신의 동상이나 기념비를 세우겠다는데 대하여서는 절대로 승인하지 않으시었습니다"
간부들도 '위인의 역사는 동상이나 기념비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업적으로 빛나는 것이다'라며 동상건설을 허용하지 않은 김정일의 모습이 떠올라 '애절함'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후반부에서 김정은은 부친의 업적과 주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면서 동상 건설을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책임일군(간부)들이 장군님의 동상을 꼭 모시겠다고 하는데, 이제라도 우리가 장군님의 동상을 잘 모십시다. (중략)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동상을 새로 형상하여 만수대 언덕에 함께 모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렇듯 일화집의 내용은 현실 미화로 가득하다. 김정일이 자신의 동상 건설을 막았다고 하는데, 실제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 안치를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궁전'을 개조하는 등 전국을 김일성의 우상화 상징물로 치장한 바 있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에 북한 주민들이 '비분에 젖어 피눈물을 뿌렸다'고 되어 있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 내부 복수의 취재협력자가 전해 온 소식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애도분위기가 저조하자 보안원(경찰)은 물론 보위부(비밀경찰)까지 동원돼 주민 개개인의 참배 현황을 파악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지역 주민들을 추모 행사에 동원한 것으로하여 주민들의 불만도 컸다고 한다.
게다가 '주민들의 한결같은 념원'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상 건설의 자재를 주민들이 떠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북한 인민반회의 녹음 음성을 들어보면 지역 주민들에게 동상 건설에 필요한 파철을 가구 당 5kg씩 시(市)인민위원회에 직접 바칠 것을 강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이 잘 응하지 않는 듯 몇 번이고 강조한다.
김정은 정권이 세습의 정통성과 우상화 선전을 위해 생활고에 허덕이는 주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도자에 '숭고한 충정'이나 '덕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올바른지 되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