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도 안 돼 보이는 소년이 장마당의 감자 매대를 지키고 앉았다. 상품 팔 생각은 않고 장난에 여념이 없다. 1998년 10월 강원도 원산시 장마당에서. 촬영 안철 (아시아프레스)
10살도 안 돼 보이는 소년이 장마당의 감자 매대를 지키고 앉았다. 상품 팔 생각은 않고 장난에 여념이 없다. 1998년 10월 강원도 원산시 장마당에서. 촬영 안철 (아시아프레스)

 

1990년대 후반의 사회 대혼란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유아의 아사, 병사가 넘쳐났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 ‘꼬제비(노숙자)'로 배회하는 모습을 나라 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좀 나은 아이들은 ‘생활전선’에 참가해야 했다. 가계를 돕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고 시장과 거리에서 장사하거나 노동도 하며 하루 벌이를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고난의 행군’기에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이 ‘생활전선’에 투입되는 것은 북한 사회의 빈곤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은 사정을 무시하고 아이들의 장사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 (이시마루 지로)

땔나무를 팔고 있는 소년. 촬영자가 다가가자 단속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1998년 10월 강원도 원산시 장마당에서. 촬영 안철 (아시아프레스)
땔나무를 팔고 있는 소년. 촬영자가 다가가자 단속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1998년 10월 강원도 원산시 장마당에서. 촬영 안철 (아시아프레스)
거지꼴을 한 소년들이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DVD를 팔기 위해 말을 건다. 값을 묻자 ‘한 장에 2천원이지만, 다 사면 5천원에 주겠다’라고 장삿속을 보인다. 2013년 3월 평안남도에서. 촬영 백향 (아시아프레스)
거지꼴을 한 소년들이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DVD를 팔기 위해 말을 건다. 값을 묻자 ‘한 장에 2천원이지만, 다 사면 5천원에 주겠다’라고 장삿속을 보인다. 2013년 3월 평안남도에서. 촬영 백향 (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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