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북한 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다'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모두 조직에서 일주일에 한번 진행하는 '생활총화'이다. 자기 비판과 상호 비판을 통해 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점검하는 모임이다. 이 '생활총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평양 출신의 탈북자 림철이 그 방법과 실태를 기고한 연재의 2회(기고: 림철"탈북자"/정리: 리책)
<탈북자 수기> 내가 받은 비판집회 ‘생활총화’ 기사 일람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직장에서 생활총화 노트를 번지면서 언제나처럼 ‘오늘 무엇을 가지고 자기 비판할 것인가’고 생각하고 있었다. 금방 떠오르는 재료는 대개 이미 쓰고 말았다. 따라서 과거의 페이지를 번지면서 다시 이용할 만한 내용을 물색했다.
나는 과거에 사용한 ‘결함’을 재이용하는 경우 두 달 이상 간격을 두기로 했다. 자주 반복하면 회의 집행자가 알아챌 수 있거나 혹은 ‘결함을 고치지 않는가’라고 비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오랜 경험상 직무와 별로 관계 없는 잘 못으로 토론하는 것이 무난하다. 그래야 책임자의 설교가 짧게 끝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가지로 생각던 끝에 ‘출퇴근 질서를 잘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을 쓰기로 했다. 나는 김정일의 ‘말씀 집’ (모음 집) 속에서 내용에 맡는 말을 찾아 노트에 적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느 혁명 초소에서도 누가 보건 말건 맡은 혁명과업을 성실히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는 이 말과 내용을 맞춰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결함을 적었다. ‘나는 부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직 할 일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퇴근했다. 이번 주에는 2번정도 10분 늦게 출근한 날도 있었다. 이런 결함이 나타나게 된 것은 혁명과업에 성실할 데 대한 장군님(김정일)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결함을 고치기 위해 장군님의 말씀 학습을 잘하고 출퇴근 질서를 잘 지키겠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일단 펜을 두고 자리를 떴다. 가장 어려운 ‘상호비판’을 쓰기 위해 나의 비판을 받아 줄 수 있는 동료를 찾아 나선 것이다.
평소 나의 상호비판 대상자는 동기의 친구들과 신입이다. 친구들은 서로 이해하는 사이고 신입 직원은 실제로 업무상 실수가 많아 결함도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비판 재료를 찾기 힘들지 않다. 즉 상대를 비판해도 원망이나 보복과 같은 피해가 돌아오지 않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무실 밖을 나서니 흡연실에 마침 같은 부서의 직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끼워들며 친한 친구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요건을 말했다. 참고로 북한에서 담배는 수입에 비해 싼 것은 아니다. 그것을 권한다는 것은 ‘꼭 부탁’한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한다.
‘야, 사실 상호비판 상대를 찾고 있는데 널 비판해도 돼?’ 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난 벌써 주문돼있어’라고 한다. 다른 동료로부터 이미 서로 상호비판하기로 약속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부탁했다. ‘한 사람한데 욕 먹는 거나 두 사람한데 욕 먹는거 큰 차이 없쟎아. 끝나면 내가 맥주 사 줄게. 그렇게 하자’
솔직히 맥주가 문제가 아니라 친구사이고 호방한 성격이라 웃으면서 동의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무리하게 부탁한 것도 친구에게 폐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밝힌대로 토요일 오후는 정치 학습이 있기 때문에 오전 11시쯤부터 시작되는 생활총화는 시간이 제한된다. 그래서 회의 집행자는 각자가 스스로 꼽은 결함에 대해 설교할 뿐 상호비판으로 지적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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