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역이 미증유의 대기근 중에 있던 1998년의 이른 봄. 나는 북한 북동부의 함경북도에 3주일 남짓 체류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에서 기부금을 모아 식량 지원을 하게되어 그 모니터링 활동 때문에 현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방문지의 하나인 나선시를 거점으로 주변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숙박하고 있던 남산 호텔의 주위에는 항상 '꼬제비(노숙자)'들이 떼지어 몰려 있었다. 관리나 호텔 경비원은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하는 아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자주 뺨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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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에 매일 모습을 보이는 작은 여자애가 있었다. 이가 많은지 항상 머리를 박박 긁고 있어 나는 그녀 몰래 '이 쨩' ('쨩'은 일본에서 이름 뒤에 붙이는 애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는 점퍼의 주머니에 중국에서 들여온 지원용 과자를 넣고 나와 틈을 봐가면서 몰래 굶주린 아이들에게 주었다. 경비원의 눈을 피해 달려온 '이 쨩'과는 매일 한두 마디 말을 주고받게 됐다. 부모님은? 집은 어디?라고 물으면 '아버지,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파트 계단에서 동무들과 함께 자고 있습니다'라고 간단히 신상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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