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경제의 확대는 어떤 사회 변화를 가져왔는가(1) >>
◆시장의 확대는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2-1.암시장 경제와 농민시장의 결합
사회주의를 표방해 온 북한에서는 식량과 농산물 이외의 소비물자는 국영 공장에서 생산했고, 최종 소비자에게 물자를 공급 및 판매하는 것은 일부 협동조합 상점을 제외한 국영 상점이었다. 이 사이의 유통은 국영기업인 '상업관리소'가 담당해 왔다.
지방 행정기관인 인민위원회 산하 상업관리과가 운영하는 국영 상점에서는 의류품에서부터 비누, 담배, 식기, 음료, 술, 야채, 생선 등의 반찬까지 주식인 곡물 이외의 물자를 국정가격으로 판매했다. 국영 상점에서 물자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된장, 간장, 맥주 등의 식료품인 경우 '식료품 공급표'가 그 외의 일반 물자인 경우 '상품공급표'가 필요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국영 상점에 가면 사탕도 비누도 생선도 살 수 있었지만, 점차 줄어들어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국영상점에 물건이 거의 나오지 않고 가끔 부식이 판매된다고 하면 너도나도 사려고 사람 위에 사람이 타고 싸우는 형국이 됐다"고 나이 든 탈북자들은 공통적으로 증언한다.
관련기사: <북한내부영상> 상품을 팔지 않는 북한 최고 백화점…선전용 상품 전시장
쌀이나 옥수수 등의 주식은 협동농장에서 생산되어 정식으로는 '양정사업소'로 불리는 배급소에서 15일에 한 번 씩 국정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노동자도 학생도 아이도 직장이 없는 주부도 은퇴한 노인들도 하루 정량에 해당한 식량공급 그램 수가 정해졌다. 개인이 식량을 팔고 사는 것은 범죄로 규정돼 엄하게 금지됐다. 국가가 식량을 독점 관리하는 이 배급제도는 '양정(糧政)'이라고 불렸다.
식량 배급의 질적, 양적 악화와 일용품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점차 암거래 장사와 농민시장이 활발해졌다. 암시장에서 다루는 것은 일본에서 귀국사업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의 소지품이나 일본에서 보내 온 물품. 마찬가지로 소련 지역에서 귀국하는 사람의 소지품, 그리고 고급 간부들에게 특별 배급된 물품 등 다양했다. 그러나 공간으로서의 암시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암거래는 개인이 행상을 하거나 집으로 손님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한편 도시에서는 농민시장으로 불리는 소규모의 합법적인 시장이 있었다. 1이 붙은 날, 5가 붙는 날 등에 열리는 정기시장이 시작돼 협동농장 농민들이 자가 소비용으로 마당 등의 자류지(自留地)에서 만든 야채나 달걀 등에 한정해 매매가 허용되었다. 식량의 판매는 엄금되어 있어 거래는 몰래 이루어졌다.
관련기사: <림진강> 북한의 시장경제 (15)
보잘것없던 농민시장은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기'의 혼란 속에서 지하에 숨어있던 암시장과 혼연일체가 되어 공공연하게 됐다.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 공간으로서의 암시장=장마당이 등장하고 금지품인 곡물을 포함해 온갖 물건이 팔리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북한내부영상> 컬러TV에서 휘발유까지…판매금지품목 암거래 도매상 성황
암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매매되는 것은 일용소비품만이 아니었다. 각지의 공장도 국가의 생산 계획에 따라 공급되는 자재나 연료, 기계 부품 등을 받지 못하게 되자 암시장에서 조달하거나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대학교원에서 큰 국영공장의 기술자를 역임한 탈북자 한정식은 2004년 필자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근무처인 국영기업의 공장에서는 필요한 모터, 전기선, 유리에서 못까지 국가에서 하나도 공급되는 것이 없어졌다. 모두 암시장에 가서 구입하는 것이다. 현지에 없으면 다른 도시의 암시장에 간다. 그러면 가격과 질을 비교하게 된다. 즉 암시장끼리 유통이 촉진되어 북한 전체가 하나의 시장으로 결합했다"
다음 페이지: 당국의 대응은-시장의 추인(追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