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친척에 도움을 청하는 귀국자 난민
조선 총련 전종 활동가인 지인으로부터 상담을 요청 받은 적도 있다. 친척이 중국으로 넘어와 도움을 청해왔다. 돈을 보낼 테니 북한에 돌아가도록 말했으나 “일본에 데려가 달라”고 고집을 부려 듣지 않는다고. 그렇게 북한 상황이 나쁜가? 라고.
반대로 중국에서 만난 귀국자 난민들로부터 일본에 있는 친척을 찾아달라고 부탁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편지가 끊어지고도 몇 년이 지났다. 그래도 의지할 곳이라고는 일본에 있는 부모형제자매 뿐이다. 전화번호를 알아봐주면 좋겠다거나, 적은 금액이라도 좋으니 지원을 해달라고 전해달라는 부탁들이다.
99년에 만난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 온 60대 후반 여성은 오사카 니시나리 출신이었다. 언니가 이따금씩 생필품이나 돈을 보내주곤 했는데 최근 십여 년 간 연락이 없다고 했다. “언니를 찾아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전해주세요. 조선에 있는 아이들 가족이 굶고 있어요”
막힘 없는 오사카 방언으로 그렇게 말했다.
받아온 주소로 찾아갔다. 나가야 풍의 작은 주택. 노부부가 나왔다. 갑자기 찾아온 낯선 사람으로부터 가족이 중국에 난민이 되어 있다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리 만무하다. 남편은 “조선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건 전부 거짓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남편이 안으로 들어간 후에 부인이 말했다. “젊은이 고마워요. 남편은 총련 지부에서 일을 오랫동안 해서 언론에서 하는 말은 안 믿어요. 봐서 알겠지만 우리도 형편이 좋지 못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동생한테 이걸 좀 전해 줘요”
갈색 봉투에 2만엔을 넣어 나에게 맡겼다.
중국에서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당신들이 조선이 좋은 곳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보냈으니 당신들이 책임을 지라”며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총련 활동가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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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방 도시의 '자이니치'가족을 찾아갔던 때의 일이다. 중국에 나와있던 귀국자의 언니에 해당하는 사람이 집에 있었다. 편지를 내밀고 머뭇거리며 용건을 전하자 그 여성은 점점 험악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남동생 가족은 상관하지 말아주세요. 남동생은 더 이상 없는 사람,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부탁이니 제발 그냥 내버려 두세요”
다시 말을 붙일 수 없게 하는 거부 반응. 토하듯 뱉어내는 말들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화와 함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무력감이 보이는 듯 했다.
※ 재일 종합잡지 '항로' 제 2호에 기고한 '북한에 돌아간 사람들의 감춰진 삶과 죽음'에 가필 수정한 것입니다. (번역: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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