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선씨(맨 오른쪽)와 김릉자씨(왼쪽 끝)가 1994년 북한에서 찍은 귀국자 친족의 마지막 집합 사진. 리 씨 일가족 4명만 2000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나머지는 생사 불명.(아시아프레스)
리창선 씨(맨 오른쪽)와 김릉자 씨(왼쪽 끝)가 1994년 북한에서 찍은 귀국자 친족의 마지막 집합 사진. 리 씨 일가족 4명만 2000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나머지는 생사 불명.(아시아프레스)

 

북한으로 돌아간 在日朝鮮人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가(1) >>>

1999년 여름, 전술한 복싱 관계자의 친척과 연길에서 만났다. 오카야마 출신인 리창성 씨와 후쿠오카 출신의 김릉자 씨 부부, 그리고 딸인 수경, 수미(당시 16세) 4명으로, 중국 조선족으로 위장하여 1년이 지나 있었다. 그 조선족은 먹고 자기만 하는 4명을 돌보는 일에 지쳐있었다. 나는 조선 중국 국경 취재를 위해서 연길 시내에 빌려둔 아파트에 그들을 들이기로 했다. 일본에 귀국해 있는 동안은 집이 비기도 하고, 이 가족과 동거하면서 귀국자들의 삶에 대해 천천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많은 귀국자가 중국으로 도망쳐 숨어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만난 사람들만 해도 평양에서 혼자 도망쳐 나온 도쿄 출신의 남성, 돗토리 요나고 출신의 부녀, 후쿠오카 출신의 여성, 오사카 니시나리 출신의 여성, 이바라기 현 출신의 모녀가 있었다. 연변과 흑룡강성 농촌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체험은 일본에서 출판되어 있는 몇 편의 수기와 공통된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니가타에서 출발한 귀국선이 청진항에 도착했을 때의 실망감, 열악한 식량배급에 귀국 후 바로 굶주려야 했던 것, 일본에서 온 이분자라는 이유로 감시와 차별을 받아야 했던 것, 말실수야 행동 하나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진 귀국자도 적지 않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귀국자들의 수기의 내용이 결코 틀린 것이거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 그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귀국자들의 삶, 죽음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마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을 '신세타령'. 그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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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시 귀국자 아사 다발

앞에서 소개한 리창성 씨, 김릉자 씨 가족은 청진시 라남구역에서 생활했다. 청진은 평양, 원산과 함께 귀국자가 많이 사는 지역이다. 김릉자 씨는 61년에 귀국해서 계속 청진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40년 간 알고 지낸 귀국자들이 많았다. 특히 40~50년대생 세대는 고도 성장기가 시작된 일본에서 청춘을 보냈던 것, 조선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 군대야 경찰에 배치 되지 않는 등 귀국자 차별을 공통적으로 경험한 탓에 동지 의식이 강한 듯 했다. 청진의 귀국자들이 90년대 말 기근으로 차례로 죽어갔던 것을 릉자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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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의 귀국자는 정말 많이 죽었어요. 귀국자 지인들 중에 분짱이라고 불리던 오빠가 있었는데, 싸움도 잘하고 남자다워서 여자애들한테 인기였어요. 일본에서 송금도 받고 있던 터라 통도 컸어요. 그게 언제부터인가 오지 않게 돼서 점점 말라비틀어진 아저씨가 돼버렸는데, 귀국자들끼리 모이면 '우리들은 죽어서 썩어도 귀국자다. 자존심 잃지 말고 살아가자'라고 하곤 했어요. '고난의 행군'으로 아사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 때, 분짱 집에 들렀더니,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너무 너무 말랐어요. 빵을 먹여주었더니 기뻐하면서 '릉자, 내가 죽으면 일본이 보이는 바닷가에 묻어줄래'라고 말했습니다. 그 며칠 후에 돌아가셔서 아는 사람들끼리 바다가 보이는 산에 묻었어요. 도쿄에서 온 '잭'이라고 불리던 귀국자는 배가 말라붙어서는 '팥죽이 먹고싶다'며 말하고 죽었습니다. '귀신'이라는 별명의 언니는, 오사카에서 총련 일을 했었습니다. '돼지고기를 조금 먹으면 소원이 없겠어'라고 말하기에 생선튀김을 가져다 줬지만 이틀 후에 죽었습니다”

※ 재일 종합잡지 '항로' 제 2호에 기고한 '북한에 돌아간 사람들의 감춰진 삶과 죽음'에 가필 수정한 것입니다. (번역: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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