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한 사람들의 김정남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지방도시의 서민에게는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 김정남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평양에서는 실제로 그를 목격한 사람이 꽤 많다.

평양 출신 탈북자 한정식 씨는 몇 번이나 김정남과 조우한 적이 있다.
"90년대 중반 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김정남을 몇 번이나 목격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고 떠드는 단체가 있길래 누구냐고 묻자, 일행이 '김정일 장군님의 아드님인 정남'이라고 소근소근 말해 놀랐습니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실제로 봤지만 언제나 동년대의 젊은 측근들과 보디가드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장남이기 때문에 큰 소리로 떠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리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양 출신의 탈북자인 백창룡 씨도 '고려호텔의 레스토랑과 커피숍, 그리고 호텔 근처의 당구장에서 보았다. 여성이 함께 있을 때도 있었다'라고 비슷한 목격담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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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2년에 걸쳐 필자가 중국에 비밀리에 접촉한 노동당의 한 중견간부는 후계자 문제에 대해 인터뷰 했을 때 김정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남? 그는 깡패다. 취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으면 식당에서 총을 마구 쏜 적도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있을 때에는 술과 여자에 빠져 평양에서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누구도 말리지 못해 김정일도 난감해 했다고 한다"

특권계층의 도를 넘어선 방탕과 사치에 대한 반발과 경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평양 무역상의 말과도 겹친다.

김정남은 결국 독수에 걸려 운명을 달리하게 됐다. 그의 인생은 너무나 기구하고 불행해서 충분히 동정을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 번 차분히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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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의 많은 미디어가 '선량한 사람' 이미지만을 전하는 것에는 진절머리가 난다. 또한 요점을 벗어난 것이다. 미디어가 만든 '캐릭터'의 친근감보다도 북한 사람들의 평가가 훨씬 무거운 것이다. 90년대부터의 방탕한 생활과 중국 등으로부터의 사업 자금은 모두 아버지인 김정일이 준 돈이다. 그것에 북한 민중의 피와 땀이 아니었는가? 이를 날카롭게 파고들지 않는다면, 김정남이 살해되기에 이른 북한의 심층해류의 어둠에는 빛이 닿지 않는다. (이시마루 지로)

※살해 직후인 2월 16일, '미국의 소리'의 한국어 사이트에 김정남의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의 미공개 사진이 게재되었다. '로열패밀리'의 사치스러운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함께 촬영된 것은 외사촌누나인 이남옥 씨.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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