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북한사람'이 처음으로 보였다

북한 난민에 대해 나는 "숨겨진 불가시(不可視)의 난민"이라고 불러왔다. 북한을 탈출할 때에는 적은 인원으로 캄캄한 밤을 틈타 국경의 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후에도 적발되는 것이 두려워 뿔뿔이 흩어져 숨을 죽이고 살기에, 그 모습과 존재를 대단히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아프카니스탄 등의 난민의 모습은 여윈 아이, 허술한 텐트 생활, 집단으로 이동하는 모습 등이 영상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런 것은 세계의 난민이 어려움에 허덕이는 모습의 일부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장에 가면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북한 난민의 경우는 나라를 떠나는 모습도, 이국의 땅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모습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중국에서는 '인민의 바다'에 숨어들어 난민임을 숨기고 살고 있어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숨겨진 불가시(不可視)의 난민"이 중국에 5~10만 명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추산했고 그 존재가 '심양사건'에 의해 처음 일본사회에 널리 인지된 것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심양 사건'은 일본 사회가 거의 처음으로 살아 있는 북한 사람의 존재를 의식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북한은 아직도 국교가 없기 때문에 사람의 왕래와 교류 자체가 크게 제약되어 왔다. 더욱이 북한 당국의 주민 감시와 통제 때문에 비록 만나 이야기 할 기회가 있더라도 북한 사람들은 전혀 자유롭게 말할 수 없어 본심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북한 당국의 통제 하에서 취재 하는 한, 거기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생각으로 어떤 생활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좋다.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취재로 우리가 보아 온 생활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 공식적인 대답으로 일관하는 진실이 보이지 않는 인터뷰는 북한 사람들의 허상에 불과하다.

이것에 비해 '심양 사건'의 보도를 통해 보여진 영상은 생생한 북한인의 절규, 눈물, 호소였다. 물론 짧은 영상이어서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민중이 로봇처럼 세뇌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 일본사회에 사는 사람과 같은 '보통의 인간'임을, 영상을 본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