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강화
1998년 이후는 중국 측의 난민 단속도 삼엄해졌다. 변방 부대(변경방위 무장경찰대)로 불리는 국경경비대가 내륙으로 향하는 간선 도로에서 검문을 하고 월경자를 숨기지 않았는지 예고 없이 민가를 돈다. 월경자가 내륙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저지하려는 작전일 것이다. 마을의 길거리에는 <불법 월경자를 돕지 말 것, 숨겨주지 말 것>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위반한 경우 2,000~5,000 중국원 (1000중국원은 당시 한국돈 약 151,592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단속 강화와 수가 너무 많아 원조의 한계를 넘고 있기 때문에 국경 연선에 사는 조선족들도 식사를 준 후에는 월경자들을 내쳐야 했다. 전술한 김 씨는 양강도 혜산시에서 월경해 온 친형을 숨기고 있었지만, 변방 부대에 들켜 2,000중국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 다행히 숨겼던 것이 육친이어서 구속은 면했지만, 북한에 최대한 빨리 돌려 보내도록 명령을 받았다.
"형님, 이제 오지 말아주세요"이렇게 말하면서 김 씨는 친형에게 용돈을 주어 북한에 보냈다.
◆월경자는 연 100만 명 넘는다
1997년부터 98년에 간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일대의 도강 포인트에서 선택한 17지점에서의 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1.월경자는 97년부터 급증해 거의 매일 건너 온다.
2.월경의 이유는 대부분 기아였다.
3.인접한 함경북도에서 오는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북한의 거의 전역에서 오고 있다.
4.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많다.
5.월경자의 대부분은 원조를 받으면 북한에 돌아간다.
취재한 17개 지점을 포함해 같은 조건의 월경 포인트인 곳이 두만강변에 적어도 약 50곳, 하류에서 강폭이 넓어지는 압록강변에 약 30곳이 있다고 나는 추정한다. 이 총 80 곳에서 하루 평균 한 명 씩 건너 온다고 계산하면 1년에 무려 2만 9,200명이 중국에 월경해 온 셈이 된다. 하루 10명이라면 연간 29만 2천 명. 절반 정도라 해도 14만 명이다. 98년 절정 때에는 한 마을에서 하루 40~50명이라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니 아무튼 엄청난 인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국에 월경하고, 그 중 북한에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숫자는 중국 당국도 북한 당국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어두운 밤을 틈타 국경의 강을 건너 중국에서도 조선족들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잠복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민의 바다'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비정부 조직(NGO)에 의한 대규모 현지 조사(후술)를 참고로 자신의 취재 경험에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에 넘어 온 북한인들은 지금까지 총 100만 명을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월경의 절정은 97년부터 99년이다.
이 방대한 탈북자가 모두 중국에 남은 것은 아니다. 국경 지역 주민에 따르면 대부분은 국경 지역 마을 사람들이나 친척의 원조를 받으면 다시 북한에 돌아 간다. 아마도 북한에서 굶주리며 기다리는 가족 때문일 것이다.
또 중국 당국의 월경자 단속이 매년 상당히 엄격해지고, 월경자가 너무 많아 중국측 지역 주민도 도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시간이 갈 수록 중국에 은신처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월경자가 다시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돌아가는 압력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중국 국내에서 아직도 잠복 생활을 하는 북한 난민의 수를 지금까지 취재 등으로부터 2002년 7월 단계에서 적어도 5만 명, 많으면 10만 명을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