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불안이 계속되어 점이 대유행. 근처에 강도가 있어 주민들이 모였다. (아시아프레스)

10월 초순, 북한 혜산시에서 탐탁지 않은 집회가 열렸다. 아침 9시 시 중심에 있는 경기장에 동원된 수백 명 앞에, 점쟁이 7명이 끌려 나온 것이다.

이 집회에 동원된 현지 취재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전해 왔다.
"모임은 '군중폭로모임'이라고 명명된 본보기 집회였습니다. 무대에 올려진 점쟁이는 남자 1명, 여자 6명. 한 명이 30대 정도고, 나머지는 나이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찰 간부가 '미신 행위를 했다'고 규탄 연설을 한 뒤,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참고기사 : <북한내부> 점쟁이와 마약 상용자를 단죄하는 공개 집회...혜산시에서 주민 수백 명 동원돼

◆무당은 사라지고, 점을 형법 범죄로 간주하는 체제

북한에서 점은 미신으로 여겨져 범죄 행위다. 금품을 받고 미신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강제노동형을 받고, 정상이 무거운 경우 3년 이상 7년 이하의 교화형에 처해지도록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2015년 개정형법 256조)

구소련을 비롯,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서 종교가 탄압받았지만 북한은 그 정도가 전혀 다르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에는 '굿'이 근절되었고 무당은 사라졌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 활동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김일성 사상을 유일무이한 지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유일사상체계'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대량의 아사자를 낸 사회적 대혼란이 발생해 불안감이 확산되자 '미신 행위'가 부활했다. 이 시기,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전국을 이동했다. 도합 백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중국으로 월경했다.

정권은 무책임했다. 매일 사람들이 쓰러지고 노상에는 사체가 방치됐다. 강도, 살인, 소매치기, 절도, 사기가 횡행했다. 경찰도 관공서도 '인민을 위한 당'도 전혀 의지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불안과 불신이 팽배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점을 믿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