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닮았다'가 김정은의 세일즈 포인트였는데...
난 12월 17일은 김정일의 7번째 기일이었다. 7년 전, 김정일의 급사로 인해 좋든 싫든 20대의 나이로 권좌에 오른 김정은은 아무런 실적도, 권위도 없기에 정권 운영을 위해서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위세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장군님과 빼닮으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라는 선전 문구가 국영미디어에서 판을 쳤다. 죽은 김정일의 위대성이 생전 때보다 더 강조되고, 김정은은 그 유일한 후계자라는 논리다. 미숙한 젊은이에게 권위를 입혀주려는 의도였다. 김정일의 기일인 12월 17일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기일 행사는 맥이 빠질 정도로 간소했다. 북부 지역 대도시에 사는 취재협력자는 기일 다음날인 18 일, 다음과 같이 전해 왔다.
"17 일 아침에 기관이나 직장마다 김정일의 동상 앞에 모여 꽃다발을 바쳤다. 일반 주민은 인민반 별로 집합해서 전과 같이 동상에 참배했다. 올해 추모행사는 이것 뿐이었다. 맥이 빠졌다. 평양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간소한 것은 처음이었다"
작년까지는 12 월이 되면 주민들에게 금족령(禁足令)이 내려졌다. 거주지를 떠나는 것이 금지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여행증명서’도 발급되지 않았다. 추모 관련 행사가 며칠간 계속되고,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지 보안서(경찰)와 관리가 확인했다. 기일 전후에 술자리를 한 사람은 사상투쟁에 걸려 비판 받았다.
김정일은 1990년대에 대량 아사자를 발생시키는 등 민생 파탄이 심했기 때문에 극도로 인기가 없었다. 주민들의 원망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김정일을 기리는 것이 기일 행사였기에, 서민들 사이에서 김정일의 존재감은 매년 옅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김정일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양에서 중국으로 나온 사업가는 이렇게 전했다. (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