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산업 거점은 더욱 곤궁
시작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무산군'으로 돌아가자.
이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한다. 철광석을 산출하는 큰 광산이 있고, 추정 인구 약 10만 명이다.
'광산도시'인 무산의 상황은 전술한 무산 거주 남성이 조사했다.
"국내 제철소용으로 소량 채굴하는 것 외에는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회사는 휘발유를 살 돈이 없어 차량을 장사꾼에게 빌려주고 푼돈을 버는 지경입니다. 채광 직장의 노동자 식량배급은 작년 3월에 정지됐습니다. 7월에는 중국 쌀 4~5kg이 지급됐지만, 그 후에는 10월 말까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굶게 된 노동자 중 다른 돈벌이를 찾아서 직장을 이탈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남성이 말하는 '직장 이탈'은, 사실 '사건'이다.
북한의 성인 남성은 나라에 의해 배치된 직장에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 1990년대 경제 파탄으로 대부분의 국영 공장과 기업에서 급여도 식량배급이 없어졌음에도 정치사상 집회와 봉사노동에 동원해 일상 행동을 관리하기 위해 노동자는 직장에 묶여 있다.
'보안서(경찰서)'에서 매일 아침 출근부를 확인한다. 무산광산은 추정 1만 명의 노동자에게 식량배급과 급여 지급이 어떻게든 이루어지던, 얼마 되지 않는 우량 국영 대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직장 이탈이 발생한 것이다.
작년 7월, 남성은 조사를 위해 광산에서 일하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출근을 독촉하러 온 보안원과 맞닥뜨렸다.
"그 보안원은 친구 집의 가난한 모습을 보고 맥없이 돌아갔습니다. 결근이나 조퇴하는 노동자들은 산에 들어가 약초와 산나물을 캐서 팔거나 해 어떻게든 꾸리고 있습니다. 출근해도 배가 고파서 중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산군은'곤란지역'으로 지정되어 주민에게 '까면'이라고 불리는 중국제 건조면과 옥수수가 약간 지급되게 되어 있다. 인도적 위기 상황 직전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통제를 늦추지 않았다. 가을부터 무단결근을 반복하는 자는 단기 강제노동 캠프인 '노동단련대'에 보내기 시작했다.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김정은 정권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남성은 올해 2월, 이러한 현황을 보고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출근해도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돌격대'에 편입돼 동해안의 어랑수력발전소 건설공사에 보내지고 있다"
'돌격대'는 국가 프로젝트의 건설노동 전문조직으로, '대원'은 국영기업과 청년단체에서 선발된다.
"현지에서는 식사가 나오지만 무급이고, 3~4개월 교대라고 합니다. 가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가짜 진단서를 만들거나 해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