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 웃는 얼굴도, 걱정스러운 표정도 있다. 교복 차림의 중고생과 어린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띈다.
중앙에 있는 깃발에는 '제56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오사카 귀국자 집단'이라고 적혀 있다. 북한으로 귀국하는 재일조선인을 배웅하러 나온 가족이나 친지와의 이별을 선상에서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촬영된 것은 1961년 4월 28일. 이날 1,145명이 소련 선박을 타고 니가타(新潟)항에서 북한으로 떠났다.
사진은 오사카에서 조선학교 교원으로 재직했던 고 양영후 씨가 제공했다. 양 씨는 제자를 배웅하러 니가타에 갔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가 끊겼고, 그 후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게 된 아이도 많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재작년 사망할 때까지 양 씨는 제자를 북한에 보낸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 '재일' 인구 6.5명 중 1명인 93,340명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북한으로 간 귀국 제1선박이 일본을 떠난 것은 1959년 12월 14일. 이후 25년 동안 무려 '재일' 인구의 6.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총 93,340명(일본 국적자 약 6,800명이 포함)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재일' 인구가 가장 많았던 오사카(大阪)와 도쿄(東京)에서 특히 많았다. 지인과 친척이 북한으로 간 기억이 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재일의 처지는 어려웠다. 국민건강보험에도, 국민연금에도 가입할 수 없었고 차별 때문에 일자리도 적었다. 차별과 빈곤에 허덕이며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1958년 김일성 정권과 조선총련이 귀국을 호소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자민당부터 공산당까지 정당, 노동조합, 자치제 등이 인도적인 사업으로서 귀국 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약 20년 전부터 몰래 탈북하는 '귀국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 약 200명, 한국에 3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작년부터 이들에 대한 청취 작업을 '재일'과 일본인의 유지(有志)로 시작했다.
그 일례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