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전 세계로 퍼졌던 '김정은 이변 발생설'은 김정은이 5월 1일 모습을 드러내어 일단 종식됐다. 이변 발생설과 더불어 미디어에서 다양하게 논의된 것이, 성급한 '후계자 문제'였다. 이목이 쏠린 사람은 여동생인 김여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약 가까운 미래에 김정은이 급사하거나 집무 불능이 되면 당과 군의 최고위 간부가 일시적으로 직무를 대행할 수는 있어도, 최고 권력자 지위를 승계하는 것은 김여정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 현시점에서의 필자의 견해이다.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우선 김정은 정권 출범 후 8년간 김여정의 궤적을 간단히 되돌아보자.
◆ 김여정의 궤적
한국 통일부가 5월 13일에 발간한 《2020 북한 주요인물정보》에 따르면, 김여정은 1988년에 태어났다. 9월생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렇다면 현재 만 31세인 셈이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근무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에서 1987년이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오사카 태생 재일조선인 귀국자인 고용희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김정은과 김여정은 '귀국자 2세'인 것이다.
・2012년 11월 19일에는 김정은,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와 백마를 타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방영되어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2014년 3월 9일 최고인민회의(국회에 해당) 대의원 선거 때 실명이 처음 등장했다. 직함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었다. 같은 해 11월에 당중앙위원회부부장이라는 직위가 알려졌다.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이 생중계됐는데, 연설하는 김정은의 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2016년 5월에 당중앙위원, 2017년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어 당내 서열 30위 안에 들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 북측 고위대표단의 일원으로서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다. 김 씨 일족으로서는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 영토에 발을 디뎠다.
・2018년부터 김정은이 수뇌 외교를 활성화한다. 김여정은 판문점, 베이징, 싱가포르에 동행해 김정은이 문재인, 시진핑, 트럼프와 회담할 때 보좌역으로서 곁을 지켰다.
・2019년 2월, 비핵화를 둘러싼 김정은-트럼프 제2차 회담(베트남 하노이)이 결렬로 끝났을 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이름이 빠졌지만, 2020년 4월 11일에 부활했다.
・2020년 들어 김여정 이름의 담화를 두 번 발표했다. 첫 번째는 3월 3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한국의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중단을 요구하자, '우리(한국)는 군사 훈련을 해야 하고, 너희(북한)는 하면 안된다는 것은 적반하장의 극치', '청와대의 행태가 세살 난 아이들과 달라보이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3월 22일에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 감사의 담화를 냈다.
◆ 김여정은 자기 현시 욕구가 강한가?
정리해 보자.
① 로열패밀리의 일원임을 어필했다.
② 노동당 중추에서 지위를 급상승시켰다.
③ 김여정을 보좌하는 모습을 노출해 내외에 존재를 각인했다.
④ 이례적인 서명 담화를 내어 체제의 실세임을 과시했다.
'백두혈통', 직위, 실세의 삼위일체로 내외에 김여정의 존재를 노출시켜 온 것은, 체제 내에서의 '2인자화(化)'를 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권이 따르지 않는 장식(얼굴마담)이 아니라, 최고 권력의 승계 순위가 1위라는 것을 어필하는 절차였다고 본다.
특징적인 것은 사진과 영상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김여정은 노출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현시욕이 강하다는 인상이다. '오빠 생각하는 기특하고 바지런한 동생'에 만족하지 않고, 김여정 본인의 의사로 권력의 계단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