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비대한 몸을 회색 정장으로 감싼 김정은이 김일성광장에서 연설에 나섰다. 10월 10일 0시에 시작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다. 김정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한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상을 무섭게 휩쓸고있는 몹쓸 전염병으로부터 이 나라의 모든이들을 끝끝내 지켜냈다는..."
'코로나 감염 제로'라는, 승리 선언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행사를 77일 앞둔 7월 25일, 긴급 소집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정반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필자가 입수한, 〈절대비밀〉로 지정된 내부 문건인 《7월 25일 회의에서의 김정은 동지의 말씀》에 명기되어 있었다. 이는 제한된 간부만 열람할 수 있는 7쪽짜리 비공개 문서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6개월간 전국적으로 각 방면에서 강력한 비상방역대책들을 강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내에 신형코로나비루스가 들어오는것을 끝내 차단하지 못한 것'
'우리 국가는 지금 상상해보는것마저도 끔찍했던 위험한 보건위기상황에 현실적으로 직면하였습니다.'
'우리는 끝끝내 전세계가 아우성을 치는 치명적인 악성비루스와 직접 맞다들었지만 낙담과 우려와 공포를 불태워 백배의 신심과 무거운 책임감을 굳게 갖고 당 중앙의 지시를 관철하는데 있어 무한한 충실성을 발휘해야 하며, 당중앙의 두리에 일치단결하여 오늘의 방역전에서 반드시 승리자가 되여야 합니다.'
즉, '승리 선언'의 3개월 정도 전에는 북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여, 김정은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인 26일,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들은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의 윤곽을 보도했다. 남한에 사는 탈북 남성이 19일 군사분계선을 헤엄쳐 넘어와 개성시에 침입했는데, 그에게 코로나 감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코로나 감염을 인정한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숨겨져 있었다. 왜 그럴까?
침투사건 발생 6일 동안 북한 당국은 남한 침입자가 나타난 것을 기화로 삼아 이미 코로나 감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공개할 것인지 검토에 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보고 있다. 코로나 유입을 한국 침입자의 탓으로 돌릴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