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재정난이 심각해져 국가기관과 국영기업의 자금 사정이 악화, 물자 구입 대금이나 급여 지급이 마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지폐의 인쇄도 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돈표'라는 금권을 발행해 대체하려고 하지만 곧 기피 현상이 일어나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최신 내부 동향을 보고한다. (강지원 / 이시마루 지로)
◆ 궁여지책으로 임시 금권 '돈표' 발행
"드디어 나라에 현금이 없어진 것 같다"
북한 각지에서 이 같은 소식이 자주 전해지게 된 건 8월 말. 행정 및 당 기관, 국영기업, 공장의 자금 융통이 악화하고 지급이 막혀, 은행에서도 현금 지급이나 송금을 받지 않게 됐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은 자금난에 대응해서 임시로 조선중앙은행금권(돈표)을 발행했다. 액면가는 5000원. 9월 초순 한국 언론이 '돈표'의 사진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밝혀졌다.
※ 5000원은 10월 21일 현재 실세 환율로 약 1030원
갑작스러운 '돈표'의 발행에 대해 한국의 여러 전문가들은, 시중에서 외화를 흡수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 외화 교환 전용 금권이 발행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빈곤층 생활 지원을 위해 '돈표'를 발행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 국내에서 조사를 진행하면서 실상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국가기관과 국영기업, 공장, 은행의 구제라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부 지역에 사는 취재협력자 A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평양과 주변에서 '돈표'가 나도는 것 같다는 소문은 9월 중순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실물을 본 건 10월 초순이 되어서다. 기업과 공장이 결제나 대금 지급을 '돈표'로 하게 됐고 그게 시장에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경계해서 되도록 받지 않으려 한다. 정부는 '정규 돈과 같다'라고 말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지금까지 실컷 속아왔다. 차라리 물물 교환이 낫다"
다른 도시에 사는 취재협력자 B 씨도 이렇게 말한다.
"손에 쥔 외화를 '돈표'로 바꾸라는 지시도 안 나왔고, 손해 볼 지도 모르는데 바꿀 사람은 없다. '절량세대(식량과 돈이 떨어진 빈곤한 가구)'에 준다는 말도 없다"
이 밖에 두 명의 협력자에게 조사를 부탁했는데, 이번 '돈표'에는 외화와 바꾸는 기능은 없고 빈곤층에 지급된 사실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은 왜 통화 공급을 하지 않고 임시 '돈표'를 발행했을까? 전술한 협력자 A 씨는 "중국에서 종이와 잉크가 들어오지 않아 일시적으로 국산 제품으로 인쇄하고 있다고 간부로부터 설명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협력자 C 씨는 "지폐용 종이와 잉크도 수입할 수 없다니, 대체 나라에 얼마나 돈이 없다는 건가. '돈표'는 100% 국산이라고 당국은 설명하는데, 질이 나빠서 일반 종이 같다"라고 말한다.
외화난으로 중국에서 수입이 어려워져, 지폐 인쇄용 종이와 잉크가 고갈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