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가난하고 멸시받는 농민에 지원하는 도시 빈민
함경북도에서,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식주 보장을 조건으로 '농촌진출(이주)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자, 생활이 곤궁한 사람들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협동농장에서는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이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의 경제 혼란으로 곤궁한 도시 주민이 늘어나고 있어 '매칭'이 순조롭게 진행될 듯했으나, 농촌의 수용 태세에 벌써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강지원 / 이시마루 지로)
함경북도의 회령시에서는 올해 들어 '농촌진출'하는 주민을 좋은 조건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주거를 보장하고 당장의 식량도 제공하며, 자유롭게 경작할 수 있는 자류지(자가소비용 부업 농지)까지 무상으로 준다고 한다. 회령시에 사는 취재협력자가 2월 들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도시 주민의 농촌진출은 노동당 지시로 시작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선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모집 방법은, 국영 공장과 기업에 근무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3개월 치 식량을 옥수수로 공급하고, 주거와 120평의 토지를 무료로 준다는 조건이다.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많이 신청하고 있다. 희망하는 지구의 농촌에 배치된다고 한다"
◆ 충격적인 도시 주민의 쇠락
북한의 국영기업 대부분은 가동이 침체, 오랫동안 급여도 식량배급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노동자인 남편이 무보수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출근을 강요받기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는 아내가 시장 등에서 장사를 해 생활비를 벌어왔다. 또한 남편이 근무처에 돈을 내고 시간을 받아, 건설과 운반 등의 삯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팬데믹이 발생하면서 경제 환경이 달라졌다. 중국과의 무역은 거의 멈췄고, 당국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사람의 이동과 개인 경제활동을 제한했다. 도시부의 장사는 큰 불황에 빠졌고 삯일도 격감했다.
현금수입이 크게 줄어든 도시 주민들의 곤궁은 충격적이다. 20년 가을에는, 각지에서 매일 농촌에 이삭을 주으러 다니는 인파가 생겼다. 일을 돕는다며 농가를 돌면서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까지 출현했다. 노인 세대와 병약자 등 취약층에는 굶주림과 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회령시 상황에 대해 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회령 시내에서도, 어떻게 해도 수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올해는 밭일을 하는 것밖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을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곧 '보릿고개(춘궁)'의 계절을 맞이하는데, 전혀 앞날이 안 보이는 것이다. 굶어 죽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3개월 치 식량이 있으면 당장 굶주릴 일은 없으니까, 어려운 사람들이 너도나도 농장에 가려는 것이다"
※ 보릿고개 : 가을의 수확을 다 먹은 봄 무렵부터 시작되는 단경기.
◆ 수용 시작한 협동농장에서 일어난 일
2월 들어, 협동농장에서 도시 빈민의 수용이 시작됐다. 아시아프레스에서는 함경북도의 한 군에 있는 중규모 A농장을 조사차 방문했다. 이미 도시 주민 수용이 시작돼, 상부에서 농장간부에게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진출자들을 돌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용이 순조롭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조사한 협력자는 설명한다.
"A농장에 온 도시부 사람들은, 모두, 마치 꼬제비(부랑자) 같았다. 이불조차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이삿짐도 보따리 몇 개뿐이었다"
게다가, 진출자에게 약속한 '좋은 대우'도 벌써 여러 문제에 직면했다. 우선 식량이다.
"3개월 치 옥수수를 지급하게 돼 있었는데, 농장에는 예비 곡물이 턱없이 부족해, 농장원에게 한 세대당 5kg씩, 옥수수와 콩, 잡곡 등을 공출하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주거다. 진출자에게 주택을 준다는 약속이었는데, A농장에서는 준비가 돼 있지 않고, 당장은 농장의 공공건물에 살게 하거나 농장원의 집에 동거시키는 형태로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진출자에게, 봄에는 집을 줄 테니까 참으라고 하는데, 농장원들도 생면부지 꼬제비나 다름없는 진출자들과 함께 살기 싫은 건 당연하다. A농장 간부들은 '동거해주면 식량과 땔감을 지급할 테니까'라고 농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 도시 주민이 최하층인 농민으로 전적(轉籍)하는 이유
북한에서 농민은 가장 가난해, '농포'라고 불리며 멸시당하는 존재였다. 농촌에 태어나면 대대로 농장원이 될 수밖에 없고, 도시로 이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와 농촌 간 이적은 '계급 변경'이라고 불릴 정도여서, 최하층에 고정된 농민 신분으로 도시 주민이 감히 굳이 전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1990년대 후반 대기근 때에는 볼 수 있었다).
이번에 도시 주민의 진출이 시작된 것은, 농촌 생활이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다. 농장원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현금 수입을 얻을 방법을 잃어 '굶주리는 공포'에 질린 도시 주민에게는, 거리를 헤매는 것보다 나은 선택일 것이다.
함경북도의 농촌이주책이 전국 규모로 실시되고 있는지는 2월 14일 현재 확인할 수 없었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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