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가을 들어 밀주행위를 ‘반국가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한 집중단속에 나서고 있다. 술 가격은 폭등했고, 당국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이나 외진 곳에서 술을 만드는 밀주점 중에서는 단속을 피하려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강지원 / 전성준)
◆ 밀주는 적들의 대북제제 책동을 돕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인민반 통해 포치
11월 중순, 양강도에 거주하는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는 당국이 밀주행위를 반국가적 행위로 규정하고 철저히 금지할 데 대한 지시가 포치됐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부분 옥수수로 만들고 있어서 식량 가지고 술 만드는 것 자체가 적들의 대북제제 책동을 돕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11월 4일에 포치했어요”
이처럼 밀주행위에 대해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식량을 원료로 하는 밀주행위가 최근 들어 국가가 철저히 관리하고자 하는 식량을 낭비하고 가뜩이나 모자란 식량 재고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단속기관도 더 이상 낟알로 술을 만들어서 돈벌이하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밀주행위가 적발될 시 최소 3개월 이상 노동단련대에 보낸다는 것을 인민반에 통보했다고 협력자는 말한다.
이와 같은 기조 아래에서 뇌물을 받고 밀주 단속을 하지 않은 규찰대 두 명이 처벌을 받았고, 도시건설사업소에서 일하는 간부 두 명이 몰래 밀주 10L를 받아온 것이 문제가 되어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인민반은 북한의 최말단 행정조직으로 보통 20~30세대 정도를 관리한다.
*노동단련대는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경미한 죄를 범한 자를 사법 절차 없이 수용해 1년 이하의 강제노동에 처할 수 있는 '단기강제 노동캠프'를 의미한다. 안전국(경찰)이 관리한다.
*규찰대는 사회적 규범을 지킬 수 있도록 사람들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임시적 동원 조직이다.
*도시건설사업소는 건설, 건설물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북한의 행정기관.
◆ 김정은 정권이 밀주를 강력 단속하는 두 가지 이유
이전에도 북한에서 밀주 단속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에 전에 없이 강한 조치가 취해지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분석된다. 첫 번째 이유는, 전술했듯 밀주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옥수수가 가뜩이나 부족한 북한에서 국가에 의한 식량배급과 식량전매제에 지장이 초래될까 우려해서이다. 즉, 식량에 대한 공급과 관리를 철저히 국가가 통제하고, 밀주행위로 인한 국가보유식량 상실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국가가 소비품 요통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즉, 소비물자의 생산, 수송, 보관, 판매를 일괄 국가 관리하에서 한다는 정권의 새 정책이다.
주류처럼 주민들의 수요가 많은 상품에 대한 개인 차원의 취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가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밀주를 강하게 단속하면서도 국영기업에서 생산된 주류는 국영상점이나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 밀주 단속 여파로 술값 상승, 주민들 사이 불만 고조
취재협력자에 따르면, 당국의 강도 높은 단속으로 인해 밀조 술 1병이 기존 1,800원에서 현재 3,000원까지 올랐다. 한편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술값은 1병에 3,500~20,000원으로 비싸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협력자는 전했다.
“국가에서 판매하는 건 비싸서 못 사먹고 술단속은 심하게 하니까, 11월 초에 OO동에서 상점이 도적 맞았는데 진열장에 있던 술만 다 훔쳐갔다고 해요”
*북한 돈 1,000원은 한화로 약 158원에 해당한다.
취재협력자는 단속이 강화된 뒤 오히려 여성들 중에서 술 먹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며, 그 때문인지 최근 여맹에서는 술풍 행위는 다양한 병을 유발하고 자녀교양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며 생활총화와 강연회를 통해 교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맹이란 민주여성동맹의 줄임말로, 취업하지 않은 성인 여성으로 구성된 사회단체이다. 가정주부가 대부분이다.
◆ 단속 강화에도 사라지지 않는 수요... 밀주행위는 없어지지 않아
단속이 강화되면서 주민과 당국 사이 힘겨루기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단속으로 충족되지 못한 술꾼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밀주 가격이 비싸지는 가운데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산간이나 농촌의 외진 곳에서 술을 만들어 아는 사람들끼리 몰래 거래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밀주행위가 끊이지 않자 급기야 당국은 대안을 내놓았는데, 밀주 관련 신고에 대한 포상으로 옥수수 5kg을 정한 것이다.
“포상은 국가에서 주는 게 아니고, 밀주하는 집을 단속해서 술 기계와 옥수수를 회수, 그걸 신고자한테 준다는 거예요. 이거 포치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누룩냄새 맡으러 돌아다녀서 몰래 술 뽑던 사람들이 애초에 하지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부 밀주자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옥수수나 돈을 미리 받고 술을 만들어 공급하는 선주문식으로 술을 만드는 등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술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권을 장악하려는 당국과, 보다 싸고 편하게 술을 마시려는 주민들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