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2023년 2월 채택된 「수재교육법」은, 공적으로 엘리트 양성을 추진하기 위한 법률이다. 엘리트 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수재반'이 교내에 설치됐는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조장되고 나아가 교육 불평등까지 초래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북한 당국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강지원 / 전성준)
◆ 북한 수재교육 역사와 「수재교육법」제정
과거 김일성 시대의 북한에서 수재교육은 차별적이며 반동적인 교육으로 폄하됐지만 김정일 시대에 이르러 수재교육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시각은 바뀌게 된다. 국가경쟁력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인재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런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평양제1중학교와 금성학원, 그리고 각 도의 제1중학교를 중심으로 수재교육 시스템을 추진해 국가 건설과 발전에 필요한 인재들을 키워내는 정책을 실시해 왔다.
*평양제1중학교 :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있는 수재교육기관으로 전국적으로 지능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여 민족간부와 과학기술 인재 후보를 양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금성학원 :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예체능 계열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수재교육기관.
2023년 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24차 전원회의에서 수재교육체계의 완비, 수재 선발과 교육 강령, 교육 조건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수재교육법」을 채택했다. 「수재교육법」은, 수재교육정책을 법제화 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인재양성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으로 해석된다.
◆ 교육의 양극화... 점심도 못 먹고 등교 포기하는 학생도
하지만 북한 당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북한 주민 사이에서 수재교육의 부작용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8월 말, 북한 북부 양강도 혜산시에 거주하는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 A 씨가 전한 소식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학교에서 수재반이 운영되고 있으며 정규 수업과 별개로 앞선 진도와 높은 수준의 교육을 진행한다.
여기에 선발된 학생들은 평양제1중학교를 비롯한 상급 수재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당국이 만든 수재교육 시스템에 편입하기 위한 주민들의 경쟁이 전에 없이 치열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협력자는 강조했다.
“수재들을 일반 학생들과 다른 틀에서 키운다는 구조인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여기에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이에요”
이런 와중에 일부 교원들이 국가가 마련해 놓은 수재교육 제도에 편입하기 위해 과외를 받는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돈벌이하는 현상이 늘어나는 등, 교육 현장에 또 다른 불평등과 부패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시스템에 진입하지 못한 절대다수 학생들의 사정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된 교육자원이 수재교육에 집중되다 보니 일반 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것. 심지어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A 씨는 말했다.
“학교에 벤또(도시락)를 싸 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반, 분단에서 교대적으로 벤또를 추가로 싸 오도록 요구하고 있어요”
◆ 대책 마련에 나선 북한 당국, 하지만…
당국은 학교 밖에서 성행하는 과외 행위의 원인 중 하나가 교원에 대한 열악한 대우에 있음을 인지하고 그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고 노임을 인상해 어떻게든 공교육 제도를 지탱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함경북도에 살고 있는 내부협력자 B 씨는 다음과 같이 전해 왔다.
“교원들에게 무조건 배급을 주라는 당의 지시가 있었는데, 시당위원회가 호소해서 일반 기업소들에서 지원사업을 통해 교원들 식량 지원하라고 통보까지 했어요, 7월부터 안남미(安南米)로 20일분의 배급을 주고 있다고 해요”
B 씨에 따르면 교원에게 주는 생활비도 꾸준히 올라, 몇 년 전에 이미 약 18,000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2023년 말 노동자・공무원 노임을 일제히 인상했는데, 교원의 매달 노임은 38,000~50,000원 정도가 됐다.
*북한 돈 1,000원은 한화로 약 170원 정도이다.
한편, 이와 동시에 사교육에 대한 당국의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A 씨는 교원 가운데 뇌물을 받고 방과 후에 별도의 교육을 해주는 행위를 근절하라는 당국의 지시가 8월 초에 내려왔다고 전해 왔다. 여기에는 모든 학생을 무조건 학교에 등교시키라는 지시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딜레마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외를 받는 학생 대부분이 당 간부나 돈주(신흥부유층)의 자녀들이다 보니 단속의 실효성에 대해서 취재협력자들도 의문을 제기했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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