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에 이르는 장기 군복무를 마친 제대군인의 비행이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사회문제가 돼 왔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대부분 인원이 부족한 농장과 탄광 등에 강제로 배치됐는데, 직장 이탈과 폭력 사태, 강도 등이 잇따랐다. 골머리를 앓던 당국은 고향 근처에 집단 배치하는 등 새로운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강지원 / 전성준)
◆ 골칫거리가 된 제대군인… 오랜 군 생활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 겪어
북한에서 일반 성인 남자는 고급중학교(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는 시기인 17~18세부터 군 생활을 해야 한다. 아시아프레스에서는 매년 봄 북한의 국방성 대열보충국 산하 군사동원부 관계자들을 통해 북한군의 모집 및 제대 후 배치 실태를 직접 조사해왔다.
2023년 기준으로 남자는 8년간의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의무제인 남자와는 달리 지원제가 원칙인 여성의 군 복무 기간은 5년이다. 그나마 2021년 3월을 기점으로 남자는 13년에서 8년으로, 여자는 8년에서 5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감수성이 가장 풍부한 시절에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다가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제대하는 청년들이 사회에 다시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로 인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배치된 지역과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업무 태만과 싸움, 도둑질 및 강도 등 심각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제대군인 사회 부적응의 가장 큰 이유는, 단축됐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긴 군복무 기간을 강행하는 북한의 군사 동원 정책에 있다. 보다 직접적인 이유를 꼽자면 제대군인 배치 정책, 특히 무리 배치 정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리 배치는 과거 제대 후 군인들을 그들의 의사나 본적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의 주요 건설 현장이나 농촌, 탄광 지역으로 집단 배치하던 정책으로,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이같은 당국의 무리한 배치 정책에 제대군인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파견된 배치지에서 각종 사건 사고들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정책 변화는 제대군인들의 사회부적응의 주 원인인 무리 배치의 부작용을 완화한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다.
◆ 무엇이 바뀌었나?
북한 당국은 올해 제대군인들을 대상으로 지역별 혹은 병종별 돌격대를 만들어 함경북도내에서 주요 건설에 동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당국은 관련 소식을 제대군인들에게 통보했고, 해당 정책을 시행하는 모임 등 조직적 행사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월 7일 함경북도 무산군에 거주하는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전해 왔다.
"올해 제대군인들을 분산 배치, 무리 배치하지 않고 도, 시, 군별로 묶어서 돌격대 형태로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 당세포까지 만들어서 하나의 작업반 형태로 만들어서 사회에 배치한다고 해요"
※ 돌격대 : 국가적인 건설 프로젝트에 동원되는 건설 토목 전문 조직. 주로 청년동맹에서 선발돼 복무 기간이 3년 정도인 ‘상설 돌격대’와 직장과 당원 등에서 프로젝트를 위해 선발되는 ‘임시 돌격대’가 있다.
※ 당세포 : 개별적 당원들이 당생활을 직접 지도, 관리, 통제하는 조선노동당의 말단 기층조직. 약 5~30명의 당원들로 구성되며 당세포비서가 책임진다.
제대군인들을 배치지의 기존 당조직에 배속시키던 이전과는 달리, 새로 당세포까지 만들어 부모가 있는 고향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분명 하나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희망을 무시하고 국가가 젊은이들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러한 조치는 무리 배치의 연장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주민들,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각자의 방법을 모색
예기치 않던 당국의 정책 변화에, 제대할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당황하는 모습이다.
"지인의 아들이 올해 제대라고 집에서 직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게… 무산군 제대군인돌격대 또는 속도전청년돌격대 몇 려단, 몇 대대 이런 식으로 조직을 만들어서 고향에 보낸다고..."
이 와중에도 일부 주민들은 각자 상황에 맞게 방법을 찾고 있다. 실례로 대학교 추천을 받은 대상의 경우,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면 해당 조치에서 제외될 수 있다. 때문에 대학 추천을 위한 뇌물을 마련하고자 무리해서 빚을 내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근본적인 개선은 아니더라도, 이 같은 정책 변화가 제대군인들의 사회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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