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탈북자 이시카와 마나부(石川学, 이재학)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 중이던 도쿄도내 병원에서 2월 25일 새벽에 사망했다. 향년 65세. (이시마루 지로)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극심하게 빈곤했던 유년시절
1958년 4월, 재일조선인 1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후,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 못하고, 교복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가난 속에 살았다.
도쿄 제6조선초중급학교에 입학, 기숙사가 있는 도치기 조선초중급학교로 전학해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2년 8월, 북한 귀국사업으로 형과 누나와 함께 셋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북부 양강도 혜산시에 배치된 이시카와 씨는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기계공으로 일했다. 현지 여성과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지만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와 아사자가 나올 정도의 사회 혼란을 겪으며 북한의 장래에 절망해 2001년 중국으로 탈출, 이듬해 9월에 일본으로 입국했다.
◆북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재판투쟁에 참여
이시카와 씨는 북한 정부가 허위 선전으로 재일조선인의 귀국을 부추기고, 귀국 후에는 출국을 금지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2018년 다른 '탈북 귀국자'들과 함께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도쿄 지방법원은 2022년 3월 청구를 기각. 그러나 2023년 10월 30일에 열린 항소심에서 도쿄 고등법원은 북한 정부의 가해 행위를 인정해 1심을 취소하고, 재판을 도쿄 지방법원에 파기환송했다.
이시카와 씨는 이 판결을 매우 흡족해 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 대접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생전에 심경을 밝혔다. 왜곡된 것을 싫어하는 강직한 성격. 재치가 있어 주변에 인기가 많았다.
※ 북한으로의 귀국 사업
북일 양국 합의에 따라 적십자가 주체가 되어 재일조선인의 귀국 사업이 이루어졌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가족 총 9만3000여 명이 북한으로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