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지방 도시에서 기업소 사이에 식량배급의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1월에는 배급이 전무했던 기업소도 있어, 노동자들이 무능한 간부를 공개 규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는 능력 있는 경영 간부가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당국이 통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강지원 / 전성준)
◆ 불안하게 부활한 배급제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공장 및 기업소의 경영 활동 재량권을 확대해, 개별 기업소가 독자적인 경영 개선에 의해 종업원 대우를 더 좋게 하도록 격려했다.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로 거의 무너진 배급제도를 개별 공장과 기업소를 통해 보완하려는 의도로 보였는데, 이후의 상황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시기 장마당을 비롯한 개인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을 통해 생계를 영위하던 많은 사람에게 있어, 가끔 생색이나 내는 정도의 기업소 배급은 그리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시장이 북한 주민의 삶을 잠식하자, 팬데믹을 계기로 북한 당국은 20~21년경부터 장마당 장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개인 경제 활동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느슨했던, 근로자의 직장 출근을 강요하기 위해 당근책으로 기업에게 노동자들의 배급을 최대한 보장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북부인 평안북도, 양강도, 함경북도의 경우,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성인분으로 보통 한 달에 5~7일 치 정도의 식량을 배급받게 되었다.
지난 2월 13일 양강도에 사는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가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개인 경제 활동의 철저한 통제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던 주 수입원을 잃은 주민들 사이에서 배급 제도는 전에 비해 훨씬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장사를 못하게 하고 배급이나 량곡판매소에만 매달리는 형편이에요. 이전에는 여자들이 돈벌이하니까 신경도 안 쓰던 배급에, 사람들이 예민해지고 있어요”
※ 량곡판매소 : 국영 식량 전매점. 김정은 정권은 백미와 옥수수의 시장 유출 및 개인의 식량 장사를 강하게 억제하고 량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판매하고 있다.
◆ 배급제도가 드러낸 불평등
문제는, 팬데믹 이후 악화한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 그 정도 배급마저 주지 못하는 기업소가 늘어나면서, 배급제도가 북한 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경영의 재량권을 활용하여 본업 외에 부업을 통한 수익으로 배급을 자체 해결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혜산시만 해도 강철공장은 1월분으로 본인 배급도 좀 주고 했는데, 신발공장이나 맥주공장 같은 데는 아무것도 준 게 없다고 해요. 강철공장은 (부업으로)땔감을 전문적으로 운송해주면서 돈벌이를 해서 노동자들 배급을 조금이라도 줬어요”
협력자에 따르면, 강철공장은 공장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겨울철을 맞아 수요가 급증한 난방용 화목을 운송해 주고 얻은 부수입으로 노동자들에게 배급했다.
“똑같이 일하는데 누구는 배급받고, 누구는 못 받느냐고 대놓고 불만을 부리다 보니, 공장 관리자들이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해요”
◆ 쌓이는 불만, 간부에 대한 비판 폭발
특히 북한에서 국가적 명절인 2월 16일(김정일 생일)을 맞아, 기업소마다 크게 차이 나는 명절 공급(특별 공급)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더욱 부각되면서 혜산시 당위원회도 비상이 걸렸다고 협력자는 전했다.
가뜩이나 배급이 중요해진 시점에 연이어 드러나는 배급 격차로 인해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불만을 터트리고 책임을 규탄하는 모습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2월 6일에 신발공장에서 무직자를 비롯한 불법행위자들에 대한 사상투쟁회의가 있었는데, 직장 간부를 대상으로 배급에 대해서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사건이 생겼어요”
일반 노동자가 공개적으로 간부를 비판하는 이례적 상황에 당황한 해당 간부가, ‘그럼 동무가 이 자리에 있으면 배급을 다 줄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고, 비판했던 노동자는 ‘배급도 못 주는 당신이 무슨 책임자냐, 우리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냐’고 소리치면서 회의장이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 '이직' 하려는, 이례적 사태 발생
이런 분위기 속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업이라도 해서 배급을 주는 ‘능력 있는’ 관리자가 경영하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병 치료, 생계 곤란, 결핵 감염 등으로 핑계를 대고 휴직 신청을 했다가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직업을 바꿔서 신청하고 해당 공장과 사업해서(뇌물을 주고) 이직하려 한다고 해요”
이런 사례가 늘어나자, 인민위원회(지방정부) 노동과에서 해당 사례를 문제시하고 치료 후에는 반드시 다니던 공장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직장 이동을 위해 거주지까지 바꾸는 등 극단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마저 있어 통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회로 국가의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김정은 정권이, 이제 와서 지금의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렇다고 사회에 싹트는 불평등의 씨앗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을 테니 향후 상황이 주목된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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