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진) 농촌 마을로 소를 끌고 가는 여성. 2008년 10월, 평양시 교외의 농촌. 촬영 장정길(아시아프레스)

보릿고개(춘궁기)를 맞은 농촌 절량세대를 대상으로 국가 비상미가 지급됐는데, 가을에 이자를 붙여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과거 오랫동안 도시의 돈주와 현지 간부가 야합해 불법으로 행해지던 고리대를 국가가 대신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전성준 / 강지원)

◆ 6개월에 30%, 국가가 고리대를 하는가?

농촌의 일부 절량세대에 국가 비상미가 지급되었다고 지난 4월 중순,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협력자가 전해왔다. 절량세대란 생활난으로 집에 식량이 떨어지고 식량을 살 현금도 바닥난 위기 가정을 말한다.

“(국가에서)중국 쌀이 내려왔는데, 가을 외상으로 쌀 1키로는 가을에 1.3키로를 분배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지급했어요. 개인들이 하는 것보다는 (이자가)낮아서 서로 받으려고 해요”

당국은 해마다 봄철이면 식량부족으로 농장원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구제성 식량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가을에 이자까지 더해 갚게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양이 충분치는 않아, 절량세대만을 대상으로 1주일분 식량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이 조치에 현지 여론은 개인이 하는 고리대는 비사회주의라고 단속하더니, 이제는 국가가 고리대를 한다고 쉬쉬하는 층도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여론을 이해하기 위해 농촌에서 행해져 온 고리대의 배경에 대해 더 살펴보자.

◆ 농촌 고리대의 배경

큰 배낭을 짊어지고 시골길을 걷는 농촌 여성. 2021년 7월 촬영 아시아프레스

북한주민에게 봄은 고달픈 계절이다. 특히 농촌에서는 겨울 동안 먹은 양식이 떨어지고 보리나 감자 같은 햇곡식도 아직 나지 않아, 보릿고개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절량세대가 매년 나온다.

국가는 절량세대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해 왔다. 이들은 식량 여유분이 있는 간부나 도시의 돈주에게 이자를 붙여 가을에 갚기로 하고 식량을 빌리게 되었다. 농촌에서 개인 간 고리대는 국가를 대신해 일종의 구제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앞서 협력자의 언급이 있었지만, 보통 봄철에 개인에게서 식량 1kg을 빌리면 가을에는 2kg을 갚아야 했다. 불과 반년도 안 되는 동안 이자가 100%에 달하는 것이다. 농촌의 간부와 도시 돈주는 큰 수익을 얻은 반면, 식량을 빌린 이들은 가정과 삶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봄철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빌린 식량 때문에, 겨울이 오기도 전에 쌀독이 바닥나는 현상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빚 갚을 길이 없는 이들이 집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이것을 ‘현대판 지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해 왔다.

◆ 당국의 단속 대응에 역효과만

김정은 정권은 2019년경부터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의 한 고리로서 농촌에서 고리대 단속을 강하게 벌여왔다. 북부 지역의 협력자들이 보내온 대표적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0년 12월, 당국이 함경북도 농촌에 단속반을 파견하여 고리대 행위를 한 농장의 분조장, 작업반장 등 간부들을 처벌하고, 고리대를 통해 받아낸 식량과 현금을 모두 몰수하는 등 강한 통제를 실시했다.

이와 함께 식량을 빌린 자들에게 고리대 행위를 신고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공표하고, 무기명 쪽지로 신고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면제를 받은 이들도 상당한 수라고 전해졌다.

당국의 단속으로 인해, 가을 외상을 주었던 돈주들과 재산을 털어 농촌에 투자했던 도시의 개인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법적 처벌을 받는 등의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었는데,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식량을 빌려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 오히려 생활이 열악한 농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2021년 4월, 양강도 농촌 지역의 보고다.

“자본주의 잔재를 소탕한다고 가을 외상(고리대)하는 사람들을 지주나 부농 같은 착취자로 취급하면서 건전한 사회주의 생할 양식을 좀먹는 행위라고 투쟁하도록 강조하고 있어요”

국가가 해결도 못 해주면서 그나마 신용으로 알아서 살아가던 방법마저 차단하니,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협력자의 설명이었다.

◆ 음성화되는 농촌 고리대

이런 상황은 코로나 기간 계속 지속되었는데, 농촌에서 고리대가 음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초 양강도의 협력자는, 당국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지만 고리대의 수단과 방법은 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돈주들이 농촌에 가을 외상 주자고 해도 분배를 맡고 있는 분조장이나 작업반장을 끼고 해야 되는데 이번에 (단속에)걸린 분조장이 계약서에 손도장까지 찍어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해요. 가택수색 하면서 계약서들이 나오면서 돈주랑 같이 단련대로 보내진다고 해요”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협력자는 말한다.

“이번 분조장은 지주처럼 놀다가 걸렸지만, 뒤에서 조용히 작업반장 이상 간부들 끼고 가을 외상하는 돈주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 속에서도 할 사람은 다 한다는 말이지”

게다가 식량을 빌리는 사람들도 정말 어려울 때를 대비해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한다.

밭에서 옥수수 수확 중인 농장원들. 2023년 9월 하순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아시아프레스)

◆ 국가 고리대는 제도가 될 수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이번 시책의 규모나 지속성 여부가 불확실하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북부의 농촌 지역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제도로 정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북한 정권 입장에서 얻게 되는 효과도 작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효과는 첫째로, 개인의 고리대로 발생하는 폐해를 막고 절량세대를 구제해 아사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제도는 일종의 구휼제도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고, 조선시대의 환곡제도 또한 사회보장제도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둘째, 정책이 제도화되면 세수 확보 효과가 생긴다. 셋째, 정권이 그토록 경계하는 비사회주의 현상을 근절할 수 있으니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일석삼조다.

그렇지만 장애물은 있다. 관건은 이 같은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의 확보다. 또 하나의 장애물은 사실상 국가가 인민에게 이자를 받아내는 정책이 사회주의 원칙에서의 퇴보로 비칠 우려이다. 개인의 비사회주의를 막고자 국가가 사회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변화가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려는 당국의 미봉책이든, 아니면 제도적 공고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든 2024년 봄 현재, 김정은 정권이 국가 차원에서 이 같은 시책을 시행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귀추가 주목된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