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일에 관한 문구를 지우는 작업이 북한군과 사회 여러 곳에서 본격화하는 모습이다.그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신성시되던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 말씀까지도 삭제되고 있어 혼란스럽다는 내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성준 / 강지원)
◆ 군대에서부터 통일 지우기 본격화하는 듯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공화국의 민족 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통일’과 ‘남한’을 지우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내부협력자들이 전했다. 아시아프레스가 처음으로 관련 정보를 입수한 것은 4월 하순, 혜산시에 사는 협력자 A 씨를 통해서이다.
A 씨는 최근 군인들이 ‘부대 꾸리기’라는 명목으로 시내에 페인트를 구하러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과 일반 주민 사이의 접촉을 금하고 있어서 군인이 시내를 돌아다닐 수가 없지만, 인솔 장교의 동행하에 군인들이 페인트를 사러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뼁끼(페인트) 구입은 전군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으로 명목은 ‘부대 꾸리기’라고 하지만, 기존 (통일 관련)구호들 위에 덧칠해서 지우거나 다시 쓰는 목적이래요”
군대가 사회의 통일 구호를 지우는 작업에 동원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선대의 구호까지 지우며 김정은의 시대 홍보
특히 주목되는 것은, 통일 문구를 지우는 과정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과 업적에 관계되는 부분까지 모조리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훈시를 새긴 비석이나 구호는 절대적으로 신성시되어 왔기에 이 같은 변화에 협력자들은 놀란 반응이다.
A 씨는 5월 초 보내온 소식에서, “삼지연에도 백두산 밀영에 조국통일 관련 비석이 있었는데, 그 비석 자체를 없앴다”라며 통일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는 김일성, 김정일 말씀이 있는 사적비 등도 가차 없이 제거한다고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와 동시에 김일성, 김정일의 업적을 새롭게 대체하기 위해 김정은 시대를 선전하는 강연과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고 A 씨는 전했다.
“김일성, 김정일 구호가 다 김정은으로 바뀌고 새로운 사회주의, 김정은식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회의도 하고 그래요”
계속해서 A 씨는 “이제는 수령의 유훈, 업적 같은 것은 학습이나 강연 때도 애초에 말이 없다”며 오히려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을 능가하는 위인 중의 위인이라며 위대한 원수님의 나라에 사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혁명과업 수행에 앞장서자고 선전한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 흔적 삭제로 현대차 택시도 폐차됐다는 정보도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B 씨는 5월 말, 현재 ‘한국’이나 ‘통일’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며 주변에서도 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B 씨는 특히 남한 제품이나 상표 등 대한민국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 대해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며, 운송업에 밝은 라선 지역의 지인에게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진에서 택시로 사용되던 현대차 5대가 모두 폐차됐다고 해요. 올해 (한국을)적대국이라고 통보한 다음에 바로 차에서 한국회사 표식 뜯어내고 내부에 한국어나 영어로 된 표기들 지우다가 결국 운행 중단했대요”
운행을 중단한 이후 타이어부터 시작해서 부속품들을 다 뜯어내 팔아서 결국 폐차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보가 사실이라면, 해당 차들은 유엔의 대북 제재가 본격화된 2017년 이전에 북한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 통일은 몰라도 교류라도 했으면
이 같은 변화에 협력자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A 씨는 “갑자기 이러니 전쟁하려는 건지, 한국이 잘 사니까 우리를 흡수할까 봐 그런지 잘 모르겠다”며, 그래도 한국은 같은 민족이고 또 경제적으로도 잘 사는 나라이니 “통일까지는 안 돼도 좋지만, 교류라도 정상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이 선대의 업적을 부정하고 지우면서까지 시작한 고립과 폐쇄, 대립의 새 시대가 북한 주민에게는 오히려 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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