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된 국경, 끊어진 인적 교류, 닫긴 사회…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만들었다. 2020년 이후 북한을 이탈해서 한국에 입국한 사람은 불과 20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아시아프레스는 2024년 7월 중순, 미스터리의 장막을 뚫고 넘어온 소중한 탈북민 3명을 서울에서 만났다.
강규린(여, 23세, 가명) 씨는 예상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나타나, 인터뷰 질문을 체크하며 김밥을 먹고 있던 기자가 미처 씹지도 못한 음식을 급히 삼키게 했다. 강씨의 첫인상은 평범한 MZ세대 소녀 같았지만, 말을 시작하자마자 거의 완벽한 표준어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저는 비법(불법)을 좋아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북한의 법률로는 사형 사유에 해당하는 탈북을, 혼자도 아니고 가족의 목숨을 걸고 주도한 그녀에게 어쩌면 꼭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21살에 개인 어선을 운영하며 동해에서 돈벌이에 매진했던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북한에서 행했던 온갖 ‘불법’ 경영의 사례를 설명해 주었다. 그중에는 비밀경찰이 추적하던 ‘지명수배자’의 고용에서부터, 북한판 ‘노조 활동’(자세한 내용은 후속 기사에서 설명한다)까지 화려한 ‘불법’의 순간들이 들어있었다.
딸을 믿고 사선을 넘은 강 씨의 어머니 김명옥(여, 54세, 가명) 씨도 인터뷰에 함께 참여했다.
김충열(남, 33세, 가명) 씨는 녹두장군을 연상케 하는 왜소한 체격과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다. 그를 보며 전봉준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그가 들려준 북한의 실상이 역사책에서 읽었던 구한말의 세태와 비슷해서였을까?
“내 땅에서 잘 살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코로나 때 보니까 나라가 참 희한한 거예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해에서 어선을 운영하던 김 씨는 지난해 5월, 임신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형의 가족 등 총 9명의 일가친척을 배에 태우고 탈출했다. 2019년 11월 이후로 바다를 통한 탈북은 이들이 처음이다.
극적으로 탈출한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을 감싼 팬데믹의 베일을 벗겨내고자 한다.
◆ 북한이라는 '블랙박스'
2020년 1월 팬데믹을 계기로 국경을 봉쇄한 이래, 북한은 하나의 '블랙박스'였다.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된 북한 정보의 공백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처음이었다. 이는 특히 두 가지 면에서 전례 없이 심각했다.
첫째, 북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수단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외신기자는 물론, 서방 외교관 및 국제기구 관계자를 포함한 '외부인'들이 평양을 떠나야 했다.
둘째, 이 시기 북한에서 인도적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보의 공백으로 인해 세계가 아는 바가 매우 적다.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중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었지만, 이번 팬데믹 기간에는 국경이 철저히 봉쇄되어 중국에 월경한 사람조차 없었던 점도 일조했다.
아시아프레스는 그동안 북한 내 취재협력자를 통해 현지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조사, 분석, 발표해 왔다. 하지만 협력자들이 주로 북부인 함경북도와 양강도, 평안북도 지역에 거주하는 데다 접근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어서 북한 전체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 선물 같은 탈북
2023년, 5월에 9명, 10월에 4명의 탈북민이 각각 서해와 동해를 거쳐 남한에 도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북한에서 경험한 이들이 직접 탈출해 남한에 도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2019년 1047명이었던 것에 비해 2020년에는 229명, 21년과 22년에는 각각 63, 67명으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급격하게 줄었다. 올해는 6월 기준 105명으로, 작년의 196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입국자의 대부분은 팬데믹 이전에 북한을 벗어나 제3국에 체류하던 이들로, 지난 3~4년 사이 북한을 직접 탈출한 사례는 거의 없다.
따라서 바다를 통해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북한이라는 미스터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선물과도 같다.
◆ MZ '돈주'들의 선택
최근 탈북에 성공한 두 가족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북한 사회에서 '돈주'로 불리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계층이었으며, 무엇보다 탈출 수단으로서 배를 갖고 있었다. 또한 두 가족 모두 젊은 MZ세대가 탈출을 주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제 탈북은 용기와 행운 외에도 젊음과 재력이 필요한 일이 돼 버렸다.
아시아프레스는 팬데믹 시기 북한에 관한 우리의 기존 이해와,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을 포함해 북한의 현 상황을 조명하는 「코로나 이후의 북한(N. Korea After Pandemic)」시리즈를 연재한다. 이를 통해 팬데믹이 북한 주민의 삶과 당국의 정책에 미친 영향, 체제 유지를 위해 김정은 정권이 모색하는 생존 전략과 주민의 지향 사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지역과 분야마다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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