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3) 비극의 두 번째 고리 – 무자비한 방역 정책, “국가가 바이러스보다 무섭다”
팬데믹을 기화로 김정은 정권은 시장에 전면적인 개입과 통제를 실시했다. 팬데믹의 시간은 충분한 준비 없이 무리한 정책변화를 추구한 당국에 주민이 밥줄을 하나씩 빼앗긴 기록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그 정책은 과연 무엇이고 그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전성준)
◆ “구제는 못할 망정 밥그릇마저 뺏아”
“옛날부터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너무 하누만요”
2023년 5월 탈북한 김충열 씨의 형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하는 말이다. 황해도 청단군에서 식량을 구하러 왔다는 영상 속 남성이 하는 말에서 북한 주민이 당국에 대해 느끼는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해당 영상은 올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한인권에 관한 유엔부대 행사에서 공개돼 세계인들로 하여금 북한의 인도적 위기에 대한 깊은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 팬데믹은 ‘절호의 기회’?
봉쇄가 길어지고 그로 인해 사적 경제활동이 움츠러든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이 시기를 국가 주도 경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회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경을 차단한 지 약 9개월이 지난 2020년 10월경부터 북한의 매체에서 팬데믹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묘사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10월 1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에 실린 논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악성비루스의 류입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국경과 공중, 해상을 완전봉쇄한 오늘의 현 상황은 자체의 힘과 기술, 자기의 원료, 자재에 의거하여 우리의 내부적 힘과 발전동력을 최대로 증대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당국은 11월 9일 자 ‘로동신문’ 사설에서도 ‘절호의 기회’라는 표현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시련이 국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대외적으로 공표됐다. 이때 김정일 시대에 사라졌던 ‘공산주의’가 다시 등장했고,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전략노선으로 제시했다.
또한 이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진행할 전문부서로 당중앙위원회에 경제정책실이 신설되었다. 특히 경제관리에 대한 기본 방향으로 국가에 의한 통일적 지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같은 추이를 고려할 때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정책적 전환은 2020년 말~2021년 초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이 초래한 재앙
팬데믹 기간에 나타난 국가의 정책 방향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사적 경제 활동을 억제하고 국가가 물품의 수입, 생산, 운송, 보관, 판매의 권리를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국가의 수중에 장악하려는 시도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주민을 국영 공장, 기업소에 출근시켜 생산을 정상화하며, 배급과 생활비의 지급을 통해 주민들의 생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실행한 정책은 주민의 삶에 재앙을 불러왔다.
2021년 4월경, 북부 지역에서 개인의 상행위를 강력히 통제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당시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가 전한 내용이다.
“조치는 4월 15일(김일성 생일)을 지나고 시작됐다. 공설시장 외 개인 장사를 근절하는 것이 목적이다. 빵과 국수를 노천에서 팔거나 집에서 운영하는 개인식당, 메뚜기장(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전면 금지다. 적발되면 물품을 몰수하고 있다”
국가의 반시장 정책이 개시되면서 달러와 위안화 환율이 출렁였고,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다시금 불안정해졌다. 가장 참혹한 것은 시장을 통해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대부분 도시 주민이 말 그대로 밥줄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역 봉쇄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도시 주민들의 생활은 이 시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 통치수단으로의 식량
팬데믹의 후반기, 배급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당국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국가가 배급 책임을 각 기관, 기업소에 전가하고 말로만 배급 정상화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3일~7일분에 이르는 배급이 지급된 정황을 현지 협력자들이 전한 바 있다. (기사 첨부)
김충열 씨는 특히, 정권이 팬데믹 후반기 주민들의 식량 접근권을 장악하고 량곡판매소를 통한 식량전매제를 실시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평가한다.
“개인이 자유롭게 유통할 때는 언제든지 내가 사고 싶은 양을 살 수 있었는데, 국가가 그 제도를 실시하면서부터 (재고가 없어)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들어진 거예요”
이와 함께 당국은 주민에게 직장 출근을 강요하고,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처벌했다. 시장을 통한 현금 수입이 끊어진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얼마 안 되는 배급이라도 생활에 보태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처벌을 피하려고 다시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배급 재원 마련을 위한 기업 차원의 자구책이나 국가적인 지원이 전무한 조건에서 이런 시도는 단발성, 혹은 몇 회에 그쳤다고 김명옥 씨는 말했다.
“사회주의식으로 한다고 직장 출근하라면서 국가가 왜 보장을 안 해줘요? 배급도 없고, 노임도 없어요. 그러면 굶어 죽으라는 거 아니나? 보장을 해주고 통제를 해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말 많이 해요”
이 같은 상황은 배급제도를 복원하려는 당국의 집착이, 주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는 의도보다는 식량을 수단으로 국가에 예속하려는 술수임을 보여준다.
◆ 주민은 밥줄 뺏기고 ‘목이 비틀린 상태’
김명옥 씨는 북한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벌이가 딱 차단돼서 사람들은 목 비틀린 상태인데, (완전)숨이 넘어가지 않았을 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산 다 팔고, 한지에 나앉은 사람이 많고도 많았어요. 오죽하면 집 팔고 굴간(터널)에 들어가 밥 끓여 먹고 사는 사람들 있었겠어요”
당국이 이같이 무리한 정책을 강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역법이라는 철퇴가 있었다. 김정은 정권은 팬데믹의 초반부터 방역이라는 당위를 앞세우고 무자비한 탄압과 처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2020년 11월 2~21일 사이 북부의 국경도시 혜산에 중국을 통한 코로나 유입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20일간 도시 전체가 봉쇄되었는데 시장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활동이 멈췄다. 당시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는 현지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옆집에도 갈 수 없다. 보위국(비밀경찰)과 안전국(경찰) 차량 외에는 시내에 개미 한 마리도 돌아다니지 않고 출근이나 동원에 나서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 의혹으로 중요 도시 봉쇄, 외출금지에 시장도 폐쇄, 아사 발생 정보도
당시 협력자는 일체의 외출이 금지되어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던 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한데, 특히 노약자, 환자가 있거나 한부모 가족 등 사회의 취약계층에서부터 아사자가 나타나는 상황을 전했다.
다음 회에서는 이처럼 ‘목이 비틀린’ 북한 주민에 닥친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 살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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