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1) 거의 유일한 탈출 루트 - 바다를 넘어온 신세대 돈주들이 말하는 코로나, 혼란, 사회변화
앞선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 주민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전에 벌써 당국의 국경 봉쇄와 맞물린 시장 탄압 정책에 의해 돈줄을 잃고 절망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기에 전국적 규모로 유행한 코로나바이러스는 북한 주민들에게 강요된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전성준)
◆ 첫 감염자는 언제 발생했나?
2020년 1월 국경을 폐쇄한 이래, 북한은 2022년 5월 12일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북한 당국이 절대비밀로 분류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김정은은 팬데믹 초기에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시인한 바 있다.
2020년 7월 25일, 노동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지난 6개월간 전국적으로 각 방면에서 강력한 비상방역대책들을 강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내에 신형코로나비루스가 들어오는 것을 끝내 차단하지 못했다”며 “우리 국가는 지금 상상해 보는 것 마저도 끔찍했던 위험한 보건위기상황에 현실적으로 직면했다”고 실토했다.
북한 코로나의 진실 「절대비밀」 문서 입수 (1) 김정은, 코로나 발생 시인했었다 - 이시마루 지로
실제로 그로부터 3일 후인 7월 28일,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가 인민반을 통해 평성과 사리원 등 일부 지역에서 감염자가 나타났다는 전달을 받았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내부> 코로나 발생을 주민에게 첫 통달, 사리원 등 3개 지역에서 감염... 국내는 단숨에 긴장
하지만 적절한 검사도 없이 그저 감기 기운만으로 20일 동안 강제 격리를 당해야 하는, 무지막지한 북한식 방역 통제의 효과였을까? 2022년 5월까지 지역 차원의 봉쇄 소식이 간간이 있었을 뿐 코로나바이러스의 전국적 유행이라고 볼만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김정은 정권의 자신감을 부풀려주었던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극단적 경계심을 보이던 초반과 달리, 김정은은 2022년 4월 25일 약 2만 명의 군인을 동원해 대규모 열병식을 감행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열병식을 5월 대유행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결국 2022년 5월 12일 북한 당국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공식 인정하기에 이른다.
◆ 공급 부족과 사재기에 의약품 가격 폭등
코로나 확산을 인정하면서 북한 당국은 전국 규모의 격리 조치를 일제히 실시했다. 하지만 당국은 주민들을 격리하고 위반자를 처벌하는 데 주력했을 뿐 효과적인 의료 지원과 대책을 강구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달 동안 아예 모든 걸 다 차단했어요. 사람들도 집 밖으로 못 나갔어요. 전혀. 도로고 건물이고 전면 봉쇄했죠. 그때 저도 코로나 앓고,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코로나 걸렸으니까”
자신도 감염됐던 당시 약품 가격은 이미 10배로 뛰어 있었다고 강규린 씨는 말했다.
“파라세타몰, 그러니까 피오백(P500)이라고 부르는 50원짜리 해열제 한 알이 500원, 10배 뛰어올랐어요. 그런데도 약이 없어요. 사람이 목숨이 간들간들한데, 아주 100배 오를 거로 보고 약을 안 파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전국적인 봉쇄를 선포한 지 나흘만인 5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이 중앙검찰소장을 비롯한 사법, 검찰 부문 간부들이 당의 의약품 공급 정책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집행하지 못한 데 대해 김정은이 분노한 내용을 꼭 짚어 소개했다. 당시 돈 있는 자들 사이에서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고 이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을 둘러싼 사재기 현상은 가뜩이나 부족한 약품의 가격을 치솟게 했고 주민의 피해를 가중했다.
◆ 주민은 버드나무 우려 마시는데 국가는 약품 장사
민간요법은 부실한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부족에 대비하는 북한 주민의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의학 정보가 부족한 북한 주민들이 크게 의지하는 중앙방송의 내용이 오히려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강규린 씨는 말한다.
“버드나무 가지 우린 물 마시라고 방송에서 알려줬는데, 그걸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들이 발생했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국가에서 그런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부정을 했어요”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이 오히려 피해를 더 키웠다는 비판도 강하다. 김명옥 씨는 당국이 코로나 예방접종이라며 파라티푸스백신을 접종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예방접종이라는 게, 파라티푸스균을 넣어가지고 접종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거 맞으니까 사람들이 고열이 나고 더 썩어지게(심하게) 앓더라고. 그다음부턴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안 맞으려고 해요, 무서워서. 우리 아랫집 할머니도 예방접종 맞고 그 여독에 죽었어요”
나중에 중국에서 수입한 약품은 약국을 통해 국가가 지정한 가격으로 팔렸는데, 기존의 시장가보다 더 비싸게 팔아 국가가 챙겼다고 김 씨는 강조했다.
“(2022년) 5월 말쯤, 약이 들어왔던 거 같아요. 약품 들여다 국가가 야매(시장가)로 팔았어요. 내가 포도당 사서 환자 치료했는데 코로나 전에 2200~2500원짜리가 그때 6천, 7천 했어요. 근데 그게 국정 가격이래요. 국가가 장사한 거지”
◆ 갈팡질팡하는 국가, 죽어가는 인민
2022년 6월 초,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는 북부 지역의 주민 감염 상황과 당국의 대응에 대해 알려왔다. 당시의 소식에 따르면, 감염자에 대한 당국의 유일한 판정 기준은 체온 측정이었다.
“정상 체온 이상일 경우 격리되어 집에서 한발짝도 못 나온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 다시 체온을 재는데, 열이 내리면 완쾌자로 넘어간다. 유열자로 등록되어 있는 기간에는 인민반장 포함 일체 접촉금지다”
당시(2022년 6월 6일) 협력자가 살고 있는 인민반 기준으로 6명의 중증 환자와 12명의 완쾌자, 그리고 7명의 유증상자가 있다고 하는데, 대략 주민의 30~40%로 추산된다.
※ 인민반은 북한의 최말단 행정조직으로, 20~30세대 정도로 구성된다. 한국의 행정복지센터에 해당하는 동사무소의 지시를 전달하고, 주민의 동향을 세부까지 파악해 당국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강규린 씨는 “주변에서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도 많고, 굶어 죽는 사람도 나오고, 그냥 와야판(난장판)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한다.
제대로 된 식량 공급 대책도 없이 전국적인 봉쇄가 시작되고, 그 기간이 지속되자 그나마 장마당에 의지해서 겨우 의식주를 해결하던 사람들이 죽어났다. 돈이나 식량의 저축이 많지 않은 북한 특성상 봉쇄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봉쇄가 풀리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봉쇄가) 너무 오래 가니까 버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갖고 있던 재산, 이런 걸 팔아서라도 끼니를 이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근데 주민들도 바빴지만(어려웠지만) 국가도 되게 바빴던 거 같아요”
주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피해가 속출하면서, 당국은 전국적인 전면 봉쇄를 실시한 지 한 달 만인 2022년 6월 12일 봉쇄를 해제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이후였다.
한 달 동안의 전국적 봉쇄 이후, 현금 고갈로 식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여기에 코로나 후유증까지 겹쳐 희생자는 더욱 늘었다.
다음 기사에서는 북한 주민에게 닥쳐온 인도적 위기의 양상과 그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To 6>>)
<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4) “주민은 목 비틀린 상태다” 시장통제로 주민 밥줄 빼앗고 칼로리 통치하려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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