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1) 거의 유일한 탈출 루트 - 바다를 넘어온 신세대 돈주들이 말하는 코로나, 혼란, 사회변화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의 조사와 탈북민들의 인터뷰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팬데믹 기간을 통틀어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2023년 봄이었다. 이 시기 인도적 위기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극심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초래했다. (전성준)
◆ 인도적 위기 배경은 시장 탄압과 주민 통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이후 주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전국적 봉쇄를 기점으로 더욱 강력해진 사적경제활동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라고 김명옥 씨는 말한다.
“장사를 못하게 손발을 묶어 놨으니까. 이미 있던 상품들 좀 팔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좀 낫고,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정말 그저 감자철에는 이삭줍기하고, 농사철에는 남의 집에 일해주고 조금씩 받고, 하루에 두 끼라도 먹으면 그나마 부자고, 그렇게도 못 먹는 사람들, 굶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와 동시에 직장을 통한 주민 통제는 더 심해졌다. 2022년 11월 북부 지역의 협력자와 통화한 내용이다.
“직장 나가서 아무리 뼈빠지게 일하고 해도 (월급이나 배급을)주는 것도 없이 맨날 단속만 한다. 매일 저녁에는 뭐 먹을까, 아침에는 뭐 먹을까 이런 생각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거다. 탈북을 못한 게 일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다”
특히 2023년 춘궁기가 되면서 팬데믹 동안 누적된 곤궁의 후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부 지역의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들로부터 전해온 소식들은 인도적 위기라고 보일 만큼 심각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우리 동네서만 4월에 네 명이 죽었고,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둘이 있다. 아무도 식량을 자체로 조달할 수단이 없다” (함경북도 무산군, 2023년 5월)
“보릿고개 들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늘어났다. 5월에 우리 인민반에서 4명이 죽었다. 굶어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병사로 처리됐다. 꼬제비(꽃제비)가 부쩍 늘었다” (양강도 혜산시, 2023년 5월)
“빈집이 늘고 있다. 당국은 그 집을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준다고 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양강도 혜산시, 2023년 6월)
이전에도 아사자 발생에 대한 소식이 간혹 있었지만, 이처럼 다수의 아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때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북한내부조사> 지방에서 기근 양상 "5월 들어 굶주림과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1) 국가 보유 식량 바닥났다
이는 비단 북부 지역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김충열 씨는 인터뷰에서 “2023년 내가 나올 때는 주변 사람들이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살던 지역은 꽤 괜찮게 살던 지역이었는데, 당시에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한다.
◆ 군대가 마을 포위하고 핸드백까지 뒤져, 도를 넘는 식량 수탈
김충열 씨는 23년 봄에 상황이 악화한 이유는 전해 가을에, 당국의 이른바 ‘포위작전’으로 일반 주민들이 겨울 양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김 씨에 따르면 2022년 가을 김정은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농촌을 포위하고 식량을 말리는 정책을 실시했다.
“22년도 가을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낟알 문제 가지고 국가가 죄어들었거든요. 우리 지역에는 5군단이 들어왔었는데, 군인들이 농촌에 나와서 직접 가을걷이하고 식량이 새지 못하게 골목골목에서 지켰어요. 여자들 핸드백까지 뒤졌으니까. 나도 내로라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수색 당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김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왜 22년 가을에 그렇게 심했냐, 20년, 21년도 봉쇄가 지속되면서 국가에서 전략 물자(전시식량)를 풀었거든요. 그걸 보충해야 한다고 그렇게 조인다고 하더라고요”
◆ 통계로는 아사자를 찾을 수가 없지만…
팬데믹 동안, 특히 2023년 봄 주민들 사이에서 상당수의 아사자가 발생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당국의 어떤 공식적인 통계에서도 아사자는 찾을 수가 없다.
김충열 씨의 말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굶어서 죽었다는 그 개념 정의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사람이 죽었다 해서 집에 가봤을 때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식량이 남아 있다고 하면 굶어 죽었다고 안 보거든요. 그런데 실례로 내가 한 달에 식량을 10kg 확보할 능력이 있었는데, 코로나나 이러저러한 요인으로 5kg 정도밖에 못 벌게 된다면, 소비를 줄이게 돼요. 조금씩 절약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제 고기 먹은 적은 까마득하고, 사람이 점점 신체적으로 허약해지면서 면역이 떨어지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그냥 살짝 넘어지거나 그냥 가벼운 감기나 설사만 걸려도 쉽게 죽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북한에 굶어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거의 다 병사나 사고사로 처리되죠”
김명옥 씨도 비슷한 언급을 한다.
“코로나보다는 그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이 많아요. 코로나 때는 많이 안 죽었어요. 코로나 걸려도 금방 나았죠. 근데 앓고 난 뒤가 문제예요. 열이 안 떨어져, 미열이. 그렇게 주변에 면역이 떨어져서 결핵으로, 암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말라죽어요. 올해(2023년)는 빈집이 많은 해다, 이런 말이 돌았어요.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리죠”
강규린 씨는 “코로나 때는 약 안 먹고 낫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후유증은 못 견뎠던 거 같아요. 영향을 추슬러야 하는데, 사람들이 먹질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희생자의 개념을 확장한다면, 팬데믹 동안 아사자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 매일매일이 충격, 각종 범죄 성행에 경찰은 무기 상시 휴대
강규린 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던 순간을 기억한다.
“갑자기 이제부터는 실전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삶이 되게 빡빡하잖아요. 이때는 자기 머리 돌아가는 거에 맞게 사는 거다. 순진하게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다가는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었어요.”
김충열 씨는 팬데믹 시기를 돌이키며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였어요. 이거 이대로 꽤 살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팬데믹이 지속되는 사이 삶이 어려워지면서 절도와 강도, 살인 등 각종 강력 범죄가 성행했다. 북한 당국은 2023년 2월 사회안전성(경찰청) 명의로 각종 범죄를 겨냥한 포고를 배포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살았던 30여 년 중에 코로나 시기가 최악이었다고 말하는 김충열 씨.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충격적인 그런 소식들이 계속 들렸고, 그래서 제일 공포스러운 시기였어요, 그때가. 우리 쪽(황해도)은 그만하면 풍요로운 곳이어서 범죄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살인이 너무 많이 일어나니(무서웠죠)”
김 씨는 자신의 이웃 가족 부부가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에 몸서리쳤다.
“더 놀랐던 건, 범죄자들이 흔적을 그렇게 많이 남겨 놓고, 아이들이 인상착의까지 다 말하는데, 도무지 잡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못 잡나 물어보니까 나라에서 수사하라 하는데, 그동안 돈도 못 벌고 현지에서 자비를 쓰면서 수사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나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그 타겟으로 안전원(경찰)들도 많이 당하니까 21년도 말쯤엔 무기를 항상 휴대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었거든요”
지금까지 네 편의 기사를 통해, 팬데믹이 북한 주민에게 미친 영향과 후과를 살펴봤다. 팬데믹은 그야말로 막대한 고통을 북한 주민들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북한 주민에 가져온 비극은 인재라는 것이다.
비록 그 시작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국가의 무리한 봉쇄와 무책임한 정책 강행,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무자비한 시장 통제와 주민 탄압은 자연재해를 훨씬 넘어서는 재앙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팬데믹이 북한 정권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두 편의 기사로 나누어 살펴본다. (To 7 >> )
<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5) 코로나 대유행 때 무슨 일… "버드나무 가지 우려 마셔라" 방향 잃은 방역 정책에 주민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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