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변두리에 세워진 '공산주의로 가자'라는 거대한 슬로건. 2023년 9월 하순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1) 거의 유일한 탈출 루트 - 바다를 넘어온 신세대 돈주들이 말하는 코로나, 혼란, 사회변화

팬데믹은 북한 주민에게도 어려운 시기였지만, 북한 정권에도 심각한 시련이었다. 특히 팬데믹이 정권에 가한 재정 충격은 여러 통계에서도 확인되며, 체제 유지에 커다란 압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시장 경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전성준)

◆ 재정 위기의 첫 번째 출로 – 시장 장악

국경을 봉쇄하고 스스로 고립된 북한 정권은 자승자박한 꼴이 되어버렸다. 통치자금의 대표적인 통로인 대중무역과 해외노동자 송출, 그리고 관광 등이 막히면서 외화수입이 급감했다. 궁지에 몰린 북한 당국은 그 출로를 찾아야만 했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시장경제 장악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경제는 북한의 공식 경제에 비견하는 규모와 기능으로 북한 주민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북한 시장경제의 꽃이라 불리는 장마당을 통해 북한 시장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통일연구원이 발행한 연구총서 『2022 북한 공식시장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1월 현재 북한의 장마당은 총 414개로, 이곳에서 징수되는 장세만 하더라도 연간 최대 3억 640만 달러 규모로 추산했다. 이는 2021년 북한의 대중 수출액(US$ 57,874,000)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북중간 무역액 추이. 중국 세관총서의 발표치를 정리했다. (제작 아시아프레스)

김충열 씨는 시장이 국가를 대신해 주민들을 먹여 살렸고 그 과정에서 일부 부유층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시장을 통해)나름대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개인이 화주가 되고, 선주가 되고, 돈을 벌게 되니까 좋은 식품 먹게 되고, 새로 또 투자도 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졌죠. 그게 결코 국가가 잘 해서가 아니라 고생스럽게 사는 조상들 보고 나 같은 후배들이 열심히 분발하고 장사해서 잘 살게 됐던 거죠”

북한의 시장경제는 정권에 ‘황금 알을 낳아주는 거위’였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당국은 그 ‘황금알’에 만족할 수 없었다. 김정은 정권은 시장경제가 창출하는 이윤을 독점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시장 장악에 나섰지만, 이후의 상황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 ‘돈주’의 몰락

‘돈주’는 ‘고난의 행군’ 이후 등장한 신흥 부유층으로, 시장경제의 성장과 함께 부를 늘려온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무역업자(밀수업자 포함), 차판 장사꾼(운송업자), 선주, 도매업자, 돈 데꼬(환전상) 등은 북한의 대표적인 돈주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 측 무역파트너, 차량과 어선, 부동산 등의 이윤 창출 수단을 활용하여 부를 쌓는 동시에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해왔다.

하지만 팬데믹 시기 북한은 돈주들의 무덤이 되었다. 김명옥 씨는 팬데믹 초반부터 돈주들이 녹아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기에 돈주들이 다 물러앉았어요(몰락했어요)”

김명옥 씨(여, 54세)

김 씨는 당국의 강력한 외환유통 통제를 돈주들이 망하게 된 첫 번째 사례로 기억했다.

“초반에 국가가 현화(달러)를 못 쓴다고 하면서 80대(100달러에 북한 돈 80만 원)하던 환율이 40대까지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들이 물이 될까 봐, 헐값에 다 바꾼 거야. 근데 나중에 다시 올렸어, 국가가”

당국이 외화 사용의 전면금지를 공표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달러와 위안화의 환율은 급락과 급등을 반복했고, 이러한 현상은 팬데믹 기간 여러 차례 관찰된 바 있다.

김명옥 씨는 수출 통로가 막힌 것도 돈주에게 타격이었다고 말한다.

“바닷가 돈주들이 몇 막대기(만 달러)씩 투자해서 중국에서 밥조개(가리비) 씨를 사다가 양식을 시작했는데, 국경을 막은 거야. 수출 못하니까 똥값이 됐지. 다 망했어”

어선을 운영했던 강규린 씨는 선주들도 팬데믹 정책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한다.

“바닷가에서는 목선은 다 까부수라고 했어요. 근데 (배에)돈이 엄청 들어갔잖아요. 배 하나에 1만불이 들거든요. 그니까 까부수지는 못하고 (3년 동안)육지에 그냥 세워 놨는데…. 목선이라는 게 육지에 있으면 다 못쓰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선주들 다 망했어요. 그래도 돈 있는 게 선주였는데 그 돈이 다 물 된 거죠”

그뿐이 아니라 강력한 국경 봉쇄로 국경 지역의 밀수업자는 씨가 말랐다. 밀수업자가 몰락하면서 자연히 그 밀수품의 공급라인을 따라 운송업, 도매업의 돈주들도 줄줄이 망해갔다.

◆ 국가는 ‘사회주의 깃발’ 들고 장사 중

팬데믹으로 인한 시장의 공황은 당국에게 일종의 기회로 작용했다. 당국은 돈주들이 쓰러진 무덤 위에 재정 확보의 빨대를 꽂았다. 반시장을 부르짖는 김정은 정권이 그 시장이 내어주는 단물을 빨아먹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나타난 현상만 본다면 현재 당국의 태도는 반시장과 시장 편승의 중간쯤 어디에 있는 것 같다. 시장에 대한 개인의 접근권을 박탈한다는 의미에서는 반시장적이지만, 시장경제의 사슬을 국가가 장악하고 그 이윤을 재정 확보의 원천으로 활용하려는 측면에서는 시장 편승적이다.

김명옥 씨는 앞에서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국가가 돌아앉아 자본주의를 한다며 “개인 꺼 몽땅 다 뺏아서 국가가 장사하겠다는 얘기”라고 일침을 날린다.

주목되는 것은 그 방식인데, 국가가 특정한 개인들에게 영업권을 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간접적인 형태로 그 구조를 정비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통제권도 유지하면서 시장으로부터 이윤을 국가가 챙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 ‘국영’기업의 실체

주민들의 자연스런 수요를 포착해 원활한 공급을 제공하던 돈주들이 줄어들자 이들의 역할을 대체해 시장의 흐름을 유지해주는 ‘국영 판매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영상점’, ‘국영약국’, ‘량곡판매소’ 등이다. 대표적인 예가 량곡판매소와 약국이다. 북한은 팬데믹 기간 식량과 의약품의 개인 판매 일체를 차단하고 오직 국영 전매소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치에 대해 북한 정권이 계획경제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탈북민 인터뷰에 따르면 ‘국영상점’의 운영주체는 개인이며 운영 방식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충열 씨는 2022년경부터 본격화된 ‘량곡판매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이 좋아 국영이지 다 개인이 하는 거거든요. 그거 운영하는 사람은 국가가 허락해준 식량 판매권을 갖고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서 리모델링도 다 자기가 하고 한마디로 일반인들의 권한을 뺏아서 국가가 개입하기 쉽게 특정한 사람한테 주고 거기서 돈을 뽑아내는 구조예요”

강규린 씨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가 운영한다고 하는 약국도 같은 방식이다.

“량곡판매소도 그렇지만 약국도 그런 식이에요. 결국 개인이 투자해서 국가 건물 안에 들어가서 하는 구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걸 운영하려면 국가가 다 투자해서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돈 있는 개인이 들어가서 운영을 하되, 그걸 국가 명판으로 해주는 거죠. 너는 국가에서 승인했다. 이런 식으로. 그렇지만 대신 내는 돈이 많아지는 거죠. 예를 들어 오늘 수입이 10만원이다 하면 바로 40% 정도를 떼어가는 거죠”

◆ 국가철도 이용하는 ‘벌이기차’까지 등장

김명옥 씨에 따르면 국가가 철도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젠 벌이기차도 생겼어요. 내연 기관차인데, 디젤유 써요. 소리 요란하고 연기가 시커먼데, 국가가 장사한다고 뛰고 있어요. 벌이차보다 조금 싸요”

벌이차는 ‘고난의 행군’ 이후 등장한 북한 시장경제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개인 차량을 이용해 사람과 물품을 실어 나르며 북한의 운송을 지탱했다.

(참고사진) 짐칸에 많은 사람을 태우는 '써비차'. 장사꾼이 짐을 나르는데도 이용했다. 2013년 3월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정확한 운영주체와 방식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북한이 전통적으로 인민경제의 선행관이고, 생명선이라고 강조하는 철도부문에서 ‘벌이기차’를 운영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협동화폐거래소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곳은 환전과 사채업을 병행하던 돈 데꼬(개인 환전상)를 대체한 국영 환전소로, 외화를 바꾸려면 반드시 이곳을 이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시아프레스에서 확인한 여러 사례들, 수산 지역의 일부 기업소에 어업권을 허용하고 생산물을 징수하는 현상, 카드를 활용한 장세의 납입 등의 행태는 개인, 혹은 중간 간부 및 지방정부 등이 취하던 시장의 이윤을 중앙정부에게 집중하기 위한 정권의 세수확보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어서 당국의 또 다른 재정위기 탈출 수단으로 당국의 집요한 주민 수탈에 대해 이어서 알아본다. (To 7-2 >>)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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