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칠흑의 4년을 비추다> (1) 거의 유일한 탈출 루트 - 바다를 넘어온 신세대 돈주들이 말하는 코로나, 혼란, 사회변화
팬데믹은 북한 주민에게도 어려운 시기였지만, 북한 정권에도 심각한 시련이었다. 특히 팬데믹이 정권에 가한 재정적 충격은 여러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기사에 이어 팬데믹 기간 세수 확보를 위한 북한 당국의 가혹한 주민 수탈 정책에 대해 알아본다. (전성준)
◆ ‘세금 없는 나라’
북한은 1974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앨 데 대하여≫를 통해 공식적으로 세금 제도를 폐지하고 ‘인류 역사에 세금 없는 첫 나라’로 스스로 선전해왔다.
경사났네 경사났네
우리나라 경사났네
수천년을 내려오던
세금마저 없어졌네
아- - 살기 좋은 나라
어델 가나 기쁨이여, 어델 가나 행복일세
북한이 제도 선전을 위해 만들어 보급한 ‘세금 없는 우리나라’라는 제목의 위 가사는 2024년의 북한 사회를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북한은 이제 국민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21세기 약탈 국가의 표본으로 전락했다.
아시아프레스와 인터뷰한 탈북민들에 따르면 특히 팬데믹 기간은 북한 당국의 도를 넘은 수탈 정책으로 주민들의 피해와 원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 ‘백성들 돈 빨아낼 연구만 하나?’ 가렴주구에 등골이 휘는 주민
탈북민들은 팬데믹 시기 북한에서 각종 명목의 세금이 부쩍 늘어났다고 증언한다. 놀라운 것은, ‘세금 없는 나라’라는 표어와는 달리 이러한 북한 당국의 수탈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에 제정되고 2011년에 개정된 북한의 국가예산수입법 제62조에는 ‘공민은 시장 같은 데서 합법적인 경리 활동을 하여 조성한 수입금의 일부를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에 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같은 법의 39조에서는 부동산의 사용료를 국가에 납입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기도 하다.
황해도에서 어선을 운영했던 김충열 씨는 실제로 부동산세가 존재한다고 증언했다.
“배를 하나 만들려고 해도 부지세를 먼저 내야 되거든요. 토세라고도 하는데 배를 지으려면 그 주변의 상당한 부지를 어질러야 하니까 그거에 대해 돈을 내는 거예요”
강규린 씨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국을 운영하려고 해도 국가건물을 쓰는 거니까 건물세를 내야 돼요. 그리고 또 수입금이라고 수익에서 또 내야 되는 거고요”
김명옥 씨는 그 외에도 법으로 정하지 않은 세금들도 징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농촌에서는 아궁이세까지 받아요. 산림경영소에서 개인들이 나무해서 불 때는 집들은 4,000원씩 더 내야해요”
그러면서 김 씨는 잠만 자고 나면 새로운 명목으로 돈을 걷었다고 말한다.
“손전화(휴대전화) 비용을 올리고, 유선 전화 값도 몇 배로 올렸어요. 원래 손전화 날씨는 무상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돈 다 내게 했어요. 벌이버스(여행객 운송용)도 그렇게 많았는데 세금 올라서 다니는 게 별로 없어요. 국가가 백성한테 돈 빨아낼 연구만 하는지. 그렇게 악착스럽게 빨아내요”
◆ ‘마른나무에서 물 짜내려 해’ 세금 아닌 세금 - 세외부담
‘세외부담’은 공식적으로 세금이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공공인프라의 보수나 교육 운영 등의 사회 유지를 위한 명목으로 주민에게 상시적으로 징수하는 돈과 물자를 아우르는 말이다. 국가예산으로 충당해야 할 공적 사업들이 사실상 주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세외 부담이 중, 하층 간부들의 사복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현실이다.
세외부담으로 인해 북한 주민이 겪는 고통은 북한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절대비밀’ 문서에 따르면, 당국은 노동당 간부 양성의 최고전당으로 불리는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제기된 세외부담 문제와 관련해 2020년 2월 2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세외부담에 대한 전당적인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해당 문서에는 ‘김일성 고급당학교의 일군들과 교원들은... 지난 2년동안 건설과 꾸리기, 지원사업을 비롯한 각종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수만딸라의 자금과 물자를 부담시키거나 쫄구어 사취하는 너절한 망동을 부리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후 2020년 7월에는 급기야 ‘세외부담방지법’을 만들기까지 했지만, 그 실효성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김명옥 씨는 오히려 팬데믹 기간에 세외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직장 무조건 출근해야 하는데, 기업소에서 계속 돈 내라 그래요. 내라는 게 그렇게 많아. 근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와요? 마른나무에서 어떻게 물을 짜내나?”
◆ 또 다른 수탈, 노력동원
노력동원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무보수 노동력을 국가가 원하는 곳에 투입해 가치를 창출해내는 전통적인 수법이다. 이는 가장 간단한 학생들의 과외동원에서부터 해외노동자 송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적으로 벌어지는, 당국에 의한 노동력 착취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농촌동원은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연례 노력동원 행사이다. 김충열 씨는 자신이 북한을 떠나던 2023년의 봄 농촌동원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때가 역대 최악으로 들볶았거든요. 밥 먹고 숟가락을 들 수 있는 인간은 다 동원돼서 나오라고 했으니까요. 80대 노인이 (농촌동원에)나오지 않는다고 여맹이요, 지구 반장이요 하는 사람들이 와서는 호통을 치고… 예전에는 단속을 와도 말다툼으로 끝내고 말았는데, 2023년 봄부터는 아예 잡도리가 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봄에 농촌에 동원된 8살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물초롱보다 머리 하나 딱 큰 애들이 물을 다 흘리면서 쫄랑쫄랑 나르는데, 그거 보면서 우리 애들도 이제 곧 저런 일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상당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김명옥 씨는 잦은 노력동원에 민심이 쌀쌀하다 말한다.
“건설은 무슨 건설을 계속하는지. 원래부터 망할라면 건설부터 한다고 사람들 속에 이런 말이 많아요”
그러면서 김명옥 씨는 노력동원에 빠지려면 또 돈이 필요하다며 최근에는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가능한 동원을 돈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여맹도 같아요. 돈만 내면 조직생활도 일체 안 시켜요. 보통 한달에 5만 원씩 내야 하는데, 나는 봐줘서 3만 원만 냈어요. 돈 안 내는 사람은 그저 계속 따라다녀야 해요”
체제의 수탈 아래 고통받는 주민도 안타깝지만, 더 암울한 것은 이러한 방식이 결코 체제가 배태한 근본적인 재정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세금 없는 나라’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벗어 던지고 건강한 세수구조를 가진 정상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 주민을 위해서나 체제를 위해서 좋은 선택일 것이다. (To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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